친밀함이 무례가 되는 순간

by 카폐인

출근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계산대 앞에 엉거주춤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주문을 하려는 건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각도. 그 정체된 공기를 찢고 매장을 가득 채우는 건 동료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있었지만, 대화의 내용은 결코 업무가 아니었다. 다른 직원이 집 열쇠와 화장실 열쇠를 바꿔 들고 갔다는, 지극히 사소하고도 사적인 해프닝.


"아니, 그걸 확인도 안 하고 간 거야? 세상에!"


내용은 다급해 보였으나 목소리엔 긴장감이 없었다. 오히려 또랑또랑했고, 지나치게 편안했으며, 또 쾌활했다. 그녀의 데시벨은 눈앞에 선 손님의 존재감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었다.


손님은 투명 인간이 된 채 서 있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슬그머니 포스기 앞으로 다가가 그와 눈을 맞췄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그제야 손님의 굳어 있던 표정에 안도감이 스쳤다. 결국 주문은 내가 받았고, 통화가 끝난 뒤 결제는 그녀가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친밀함이라는 이름의 성벽은 묘하다. 일터에서 사장과 직원이 서로의 속사정까지 훤히 꿰고 있는 이른바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 그들 사이엔 비밀이 없고, 가끔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가 안줏거리처럼 오가는 것도 느껴진다.


나는 조용한 편이다. 일터는 일터일 뿐이며, 굳이 선을 넘어가며 사적인 영역을 공유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쪽이다. 그래서 나는 필연적으로 겉돈다. 처음에는 그 소외감이 낯설어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탓인가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님을 앞에 두고 수화기 너머로 깔깔거리는 그 장면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일터에서 친분이 과해지면, 예의는 헐거워진다.


그 사실이 조금은 불편하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저 견고하고도 무례한 유대감 속에 섞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랄까.


나에게는 나만 아는 선이 있다. 누군가는 차갑다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말할지 모를 그 적당한 거리감.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 거리감 덕분에 나는 동료의 웃음소리보다 손님의 당혹스러운 눈빛을 먼저 볼 수 있었음을 말이다.


참, 우리가 남이어서 다행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