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안 볼 사람들

by 카폐인


명절 연휴의 카페는 치열한 전쟁터와 같다. 평소라면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던 공간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사람들과 주문음으로 가득 찬다. 그날도 그랬다. 평소보다 배는 많은 인파를 감당하기 위해 비좁은 바 안에 나포함 네 명의 직원이 투입되었다. 서로의 동선이 꼬이는 것을 감수하며 우리는 마치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포스기에서 끊임없이 뱉어내는 영수증은 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졌고, 매장 안은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누가 봐도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뻔히 보이는 바쁨’이 자신의 조급함을 달래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주문받은 음료를 만드는데 초집중을 하고 있는데 내 앞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팔짱을 굳게 낀 채, 마치 감시자처럼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손님이었다. 그 손님의 자세는 마치 ‘내 커피가 왜 빨리 나오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묵묵히 커피를 만들었다. 마침내 주문 번호를 부르고 커피를 건네려던 순간, 손님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커피 쏟았잖아요. 다시 만들어 주세요.”


홀 안에 있던 모두 그 손님을 향해 시선이 쏠렸다. 나는 커피를 쏟지 않았다. 엎지도 않았다. 손님이 화난 이유는 단 하나. 커피 한 방울이 픽업하는 테이블에 톡 하고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죄송하다며 다시 드릴게요라고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억울함이 밀려왔다. 왜냐하면 그 짧은 찰나, 손님의 표정과 날 선 목소리에서 나는 직감했다. 그것은 단지 바닥에 떨어진 커피 한 방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기다린 시간에 대한 불만과 짜증을 합법적으로 표출할 ‘명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명절맞이 이벤트처럼 진을 빼놓은 손님은 또 있었다. 이번엔 크림 라떼였다. 크림 라떼를 ‘아주 뜨겁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사항이 들어왔다. 유난히 따뜻했던 이번 명절이었지만, 여전히 뺨을 스치는 바람은 서늘했다. 매장 밖을 나서는 순간 음료가 (여름보다는) 빨리 식을 것이라는 걸 예상한 나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우유를 한계치까지 뜨겁게 데워 나갔다.


역시 나의 예상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실현되고 말았다. 방금 매장을 나섰던 손님이 다시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사장님을 향해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분명히 뜨겁게 해달라고 했는데, 커피가 다 식었잖아요!”


사장님도, 나도, 다른 직원들도 모두 말문이 막혔다.

우유를 아무리 펄펄 끓을 정도로 뜨겁게 스팀 하더라도, 그 위에 올라가는 크림은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상태다. 거기다 아직 겨울이지 않은가.


사장님은 침착하게 크림 라떼의 특성을 설명했다.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이 올라가 온도가 조금 내려간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잔뜩 화가 난 손님에게 이성적인 설명이 닿을 리 없었다. 결국 사장님은 “죄송합니다”라는 사과와 함께 내게 그 커피를 건넸다.


손님이 들고 온 커피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뜨거운 라떼 위에 올렸던 부드러운 크림은 이미 반쯤 녹아내려 있었다. 그것은 커피를 대충 미지근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지 않도록 한계치까지 뜨겁게 데웠음을 증명하는 흔적이었다.


나는 말없이 컵을 다시 스팀기 아래로 밀어 넣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라떼가 강제로 다시 데워졌다. 크림이 이리저리 섞인 채 다시 끓여진 커피의 식감과 맛은 보나 마나 엉망일 것이다. 마치 내 손길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손님의 일그러진 표정처럼 말이다. 밀려드는 다른 주문들을 정신없이 쳐내는 와중에도, 나는 기어코 그 엉망이 된 라떼를 끓여서 내밀었다. 결국 손님은 자신이 원하던 ‘뜨거운 온도’를 얻고는 만족한 듯 매장을 나섰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 마음이 조금 헛헛했다. 명절이란 본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덕담을 나누며 한숨 돌리는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던가. 다들 피곤하고 바쁜 일정에 쫓긴다 한들, 누군가 나를 위해 커피 한 잔을 만들어내는 그 짧은 기다림조차 허락하지 못할 만큼 사람들의 마음속 여유는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묵묵히 일하던 우리에게, 사장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명절이라 잠깐 들른 손님들이잖아. 두 번은 안 볼 사람들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우리를 지치게 했던 그날 선 말투와 화난 표정들은, 빨간 날이 만들어낸 찰나의 환영 같은 것이라고. 내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평생 다시 마주칠 일 없는 타인일 뿐이라고.


나는 남은 커피 찌꺼기를 털어내듯, 그날 받은 불쾌한 감정들을 그날 바로 마음의 쓰레기통에 툭툭 털어버렸다. 세상에는 최선을 다해도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땐 그저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적당한 무관심으로 덮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어차피, 두 번은 안 볼 사람들이니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