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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탓 Apr 30. 2022

효도는 셀프_0

엄마의 베스트 컬렉션은 이미자 노래다. 


첫 곡은 '나는 17곱 살이에요.'다. 


내가 검색으로 찾아본 기록으로는, 이 곡이 발매된 가장 오랜 앨범은 1977년 황금심 씨의 베스트 앨범이고, 제목은 '나는 17살 예요.'다.


베스트 앨범이니 그전에 어딘가 수록된 앨범이 있겠는데, 나는 찾지 못했다.


엄마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자기 나이를 잊고 70년 전으로 돌아간다.


옆에서 내가 방해하며 장난스럽게 묻는다.


"엄마 열일곱 살이야?"


"그럼 내가 열일곱 살이지."


천진난만한 눈빛과 웃음으로 엄마는 신나서 농담으로 받는다.


이 순간 엄마는 즐겁다.


이제 지나온 여든여덟 인생에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엄마는, 첫 곡을 들으며 따라 부를 때면 꿈 많고 설레는 십대가 된다.


'아씨'와 '여자의 일생', '기러기 오빠'처럼 엄마가 평생 들었을 이미자의 인기곡들은 그 시절만큼 섦다.


섦지만 익숙해서 엄마는 쉽게 따라 부르며 한껏 노래에 빠져들어 목이 메어지곤 한다.


곧 그런 곡들이 흘러나올 것이기에, 나는 일부러 첫 곡을 앙증맞고 신나는 곡으로 준비한다. 


오늘도 엉치가 아프고 다리와 무릎이 힘들지만, 엄마는 노래의 힘으로 걷는다.


열일곱 나이의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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