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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탓 May 02. 2022

백 년에 한 번 올지 모르는 지진

구조설계

훈련소에 간 아들을 면회하려고 아침부터 서둘러서 딸네미를 만나 논산으로 향했다. 늦가을로 접어든 계절은 싸늘하게 대지를 끌어안고 세상 구석구석을 여러 가지 갈색으로 칠해가고 있었다.


항상 초보 아빠인 나는 성인이 된 딸 아들에게 언제나 고맙고 미안했다. 나는 자식에 관한 한 아빠로서의 나에게 한 번도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나를 두고 '못난 아비'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번에도 아들 면회 때문이지만 모처럼 딸과 함께하는 여행 내내 나는 구조설계라는 숙제를 하느라 끙끙 앓았다.


집이 들어앉은 터는 25미터 도로 옆에 접해 있는 약간의 경사지다. 북한산 서쪽 끝자락에서 살아온 백련산이 한강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오다가 잠시 숨 돌리는 곳이다. 왕복 4차선 도로가 기울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도로는 산을 조금 깎아서 평평하게 달리고, 산에 가까운 도로의 위쪽부터는 좀 더 경사가 져서 백련산으로 올라가고, 그 반대편인 집터 쪽부터는 완만하게 홍제천과 한강을 향해 느긋하게 내려간다.


지질조사를 한 결과 땅이 꺼지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어서 쿨하게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럴 리가 천만의 말씀,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다. 구조설계를 맡은 이는 서울지역에 백 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지진까지 고려해볼 때, 땅 20~30미터 속에 있는 암반이 급경사여서 만일의 경우 무거운 건물이 기울지 않도록 기초공사를 보완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고는 구조설계도면을 건네주지 않았다. 구조 설계가 넘어오지 않으면 시공을 할 수 없다.


만일의 경우, 그 말 그대로 1/10,000=0.01%니까 일만 년 중에 한 번인데!ㅎㅎ 설계도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건물을 떠받치는 기초와 골조를 다루는 구조설계라는 게 있다. 이것 말고도 소방설계, 전기설계, 배관설계, 무슨 설계 이런 걸 다 모으니 꽤 두툼한 책 한 권이었다. 그 책을 넘기고 있노라면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창작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자부심인지 의구심인지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절대 안 돼요. 우리 애들이 매일 다닐 건물에 그런 문제가 있으면 안 되죠!”


이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건 K어집의 부모들이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위한다는 에미애비를 누가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거기 5층에서 살 건데. 내 엄마는 3층에서 하루 종일 지낼 건데. 자기 자식만 귀한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인프피(INFP)인 나는 너무 소심했다. 저런 말을 그때 내뱉었으면 언쟁이 더 심해졌으려나? 나는 그냥 흡연시간을 늘려서 그 말들을 속에서 태워버렸다.


훈련을 마친 아들네미랑 만나서 오래간만에 밥을 같이 먹고 후식을 먹으러 카페에 들어갔다. 한가해 보이는 논산이라는 작은 도시에 큼지막한 디저트 카페가 뭘 먹고살까 하는 궁금증은, 그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싹 사라졌다. 카페의 테이블은 군복을 입은 훈련병들과 그 가족 또는 연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초겨울 날씨에 더 시원한 냉음료 주문을 마치고 앉자, 설계를 맡은 C 건축사가 전화를 해왔다. 짬밥살이 오를 대로 오른 아들네미에게 눈빛으로 미안함을 보내고, 왁자지껄한 카페를 나와 옆 공터로 가서 건축사와 긴 통화를 했다.


그는 해외출장 중이었다. 구조설계 문제가 심각해질 조짐을 보이자 무려 국제전화로 연락을 해온 거다. 국제전화회의는 30분을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라기보다 끝날 수 없었다. 결론이나 절충점, 또는 대안을 서로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긴 통화를 결론 없이 끝내고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는 동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공사를 맡은 현장소장이다. 중년 나이의 그는 구조 설계가 자기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도와보려고 교수 한 분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니 그냥 구조설계 넘겨주면 되지, 건축주가 괜찮다는 데에. 제가 지금 교수 만나서 부탁하려고 토목업체 사장님이랑 가는 중이에요. 근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하"


너무 고마웠다.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했고, 사람의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를 어떤 것이다. 그날 소장의 자원봉사는 결국 물거품이 되었지만, 영혼이 탈탈 털려있던 나는 저 멀리서 희망이라는 나비 한 마리가 희미하게 날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멘붕 직전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생각지도 않게 버틸 힘을 얻었다.


여기저기 엄청난 전화질을 해대서 다른 경로로 건축구조기술사를 수소문한 결과도 같았다. 소개받아 건너 건너 찾아낸 기술사들은 도면을 건네받고는 계산이 복잡하다며 도장을 찍어주려 하지 않았다. G도시건축 K실장의 설명으로는 4층에 있는 청소년 K의 높은 방과 6층 집의 위치가 아래쪽이어서 구조 설계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는 와중에 너무나 미안한 일이지만, 아들네미와의 면회는 담배연기처럼 흩어져 날아가 버렸다.


구조설계를 맡은 기술사는 건축주인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단호히 거절했다. 기초설계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공사가 늦어질수록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한 가득인데, 그의 전문가다운 고집은 이상하게 마냥 밉지만은 않다.


그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두 부분을 보완하는 것으로 수정해서 구조설계를 보내왔다. 우리 건물 기초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땅속으로 깊이 박혀있다. 그리고 2층과 3층, 5층과 6층 사이에는 십자로 된 굵직한 철근 구조물이 들어가 있다. 땅 밑에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을 내리고, 골조의 중간중간을 단단하게 연결해 두었으니, 이제 백 년 만에 올지 모르는 서울의 지진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ㅎㅎ


시공을 서두르려고 현장소장은 처음 설계를 가지고 버림콘크리트를 벌써 해놓은 상태였다. 수정된 기초설계로 그중 일부를 걷어내고 공사를 하기까지 며칠이 더 걸렸다. 이제 12월 초다. 연말까지 1층과 2층 바닥까지 가보려던 계획은 물 건너 갔다.


이런 철골 구조물 두 개가 2~3층과 5~6층 사이에 들어가 있다.


현장소장은 처음에 건네받은 설계로 버림콘크리트까지 해놓아서, 아마 구조설계 이슈가 그냥 지나갈 거라고 기대를 한 것 같다. 반면에 구조 안전에 대한 G 도시건축의 입장은 분명했고, 안전에 철저하자는 데 현장소장도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콘크리트 쳐놓았으니 별 수 있어?'와 '콘크리트 쳐놓아도 안된다.'라고나 할까. 설계와 시공 사이에서 토류판과 CIP에 이은 두 번째 긴장이었다.


버림콘크리트 모습. 사진 왼쪽 하단 부분을 걷어내고 재시공을 했다.


'백 년에 한 번 올지 모르는 지진' 이 문구는, 사실 건축구조기술사가 사용한 말이 아니다. 설계 워크숍을 하면서 C 건축사가 건축을 잘 모르는 참여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면서 꺼낸 문구다. 구조기술사와 건축사는 전문가로서 건축주를 위해 자기 노력을 충실히 한 것이다.


그 문구를 들은 참여자들에게 C 건축사가 예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누구에게는 '건물의 수명이 백 년의 반에 반이니, 사실은 일어나지 않을 일'로, 누구에게는 '내 아이가 1층 어집에 있을 때 만날 수 있는 일'로, 누구에게는 '그건 모르겠고 어떻게든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기우'로 참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뭐랄까, 어찌 보면 유언비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증폭된 의구심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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