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탓 Apr 30. 2022

터파기와 흙막이 공사

이제 공사 시작이다. 첫 단계는 터파기와 흙막이 공사다.


헌 집 철거를 끝내고 속을 드러낸 건축 부지는 아무것도 없어서 휑하니 넓어 보였다. 어렵사리 구했지만 대지는 내가 원하던 넓이가 아니었다, 아닌데 어쩔 수 없다. 땅이란 게 늘려서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확 늘리려면 인접한 필지를 하나 더 사야 는데 그건 내 능력 밖이다. 집 짓겠다고 주야장천 복권을 사서 당첨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집짓기 현장은 건물이 25미터 4차선 도로에 인접해 있고, 옆으로는 4미터 도로가 있는 모퉁이다. 도로에서 건물을 바라보며 오른쪽에 6층 건물이, 뒤쪽에 3미터 낮게 2층 양옥집이 있다. 그러니까 공사를 진행할 때 큰길과 좁은 길 쪽 두 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 작업이 수월한 편이다. 흙막이 공사에서도 옆의 6층 건물 쪽만 신경 쓰면 된다. 땅속에 물이 흐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쉬운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가운데 집이 공사 현장(카카오 스카이뷰 2016년)


내가 터파기 공사를 시작하기 세 달 전, 상도동에서 터파기 공사를 하던 현장의 바로 위 3층짜리 유치원 건물의 일부가 기울다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은 다 연결돼 있다. 그 붕괴 사고와 내 집 짓기도 그러했다.


건축주와 공사 허가권자와 설계자와 시공자가 가장 안전하게 해야 하는 공정은 갑자기 흙막이 공사인 세상이 됐다! 설계 쪽에서 옆 건물과 도로 쪽으로 CIP공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왔다. 상도동 유치원 붕괴사고의 원인은 공사를 맡은 시공사가 CIP공법을 사용하겠다고 했다가 더 저렴한 공법으로 변경한 데 있다고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내 눈에는 우리 현장에선 토류판으로 충분해 보이기만 하구만. 나의 숙제는 공사기간이었다. 철거한 이후에 지질조사와 경계측량을 하고 착공계를 내면 금방 시작할 줄 알았더니, 터파기까지 2주일이 걸렸다. 헌 집을 철거하고 나서 아랫집에서 벌써 구청에 민원을 넣어서 공사가 며칠 미루어진 탓이다.



철거를 할 때, 스카이뷰에서 보이듯이 네 집이 만나는 지점의 담이 시멘트 속 철근으로 연결돼 있어서 그대로 두었다. 옆 건물과 그 아랫집 주인과는 협의해서 옛 담장을 허물고 새 벽을 깔끔하게 세우기로 했는데, 아랫집 주인은 담에 손도 대지 말라는 거다. 나는 좀 민감한 분인가 정도로 생각하고 아랫집이 원하는 대로 그냥 두었다. 그렇게 넘어가나 싶었는데 내 공사 현장 때문에 자기 집 담벼락이 넘어간다는 민원을 넣었다. 걱정이 되어 달려 내려가 기울어진 상태를 확인해보니까 오래된 균열 말고는 담장이 그대로다. 멀쩡한 담벼락 사진을 찍어 구청에 보냈다. 어쨌거나 나는 민원이 예측 불가능한 현상이면서 공사에 영향을 준다는 교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 담이 현장과 경계 쪽 부분. 곧게 서 있다.


아이고, 이제 연말까지 1층 골조를 세울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불투명한 미래이지만 아직 가능할지 모르니, 나는 큰 위험이 아니라면 며칠이라도 아낄 수 있는 토류판에 베팅했다. 현장소장과 토목업체 대표도 같은 의견이다. 설계자는 여전히 CIP공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설계자와 시공자 사이에 만들어진 첫 번째 긴장이었다. 설계자와 시공자 사이에, 건축주와 시공자 사이에, 시공자들 사이에 적잖이 이견과 갈등이 있었다. 아주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입장이나 강조점의 차이였다. 생각과 경험이 다른 건축가와 현장소장이 충돌하지 않도록 내가 뭔가를 해야 했다.


순서는 설계 쪽부터다. 이 경우에 옆 건물과 높낮이가 같아 토압이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고, 토류판 공법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이 났다. 나는 G도시건축과 협의해서 토류판으로 진행하기로 하고는, 이어서 현장소장에게 대지정리와 토류판으로 흙막이를 진행하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마침 강원도의 토목회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파주 쪽 현장소장을 하고 있어서 늦은 밤에 가서 만났다. 내 숙제를 하려고 갔다가 혹을 붙이고 왔다. 그는 공사 지연으로 세 자릿수 억 원 대의 공사에서 큰 손실이 생겨 공사를 발주한 학교와 본사 사이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회사의 확정된 손실은 내 공사비 총액을 뛰어넘는다. 돈에는 지문이 없고 현실은 냉정하다. 그가 준 도움말은 대지정리와 흙막이 공사를 할 때 최소 단위가 억 원 대라 장비 임대를 핑계로 선수금을 받고 튀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라는 거였다. 나는 공정에 따라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나누어 지급해서 그런 위험을 낮추려 했다.


일본 유학파라는 토목업체 대표는 현장에서 순식간에 부지를 정리하고 흙막이 공사를 마쳤다. 내 마음에선 칠순의 노인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웃픈 현실은   늦여름  세상이 시끄러웠던 상도동 유치원 붕괴 사건에서, 검찰이 공사 책임자와 시공사를 기소한 것은 38개월 만인 올해 2월이라는 거다. 나는  붕괴 사고     만에 공사하면서 토류판과 CIP 놓고 며칠을 씨름했는데, 검찰은 38개월 만에 기소를 했다. 내가 세상을 3 정도는 앞서가는 사람인 것인가? 아니, 그들이 3 동안 눈코   없이 너무 바빠서 그랬을 거라고 믿는다.


#서울에서집짓기 #집짓기 #공동체주택 #터파기 #흙막이 #토목공사 #민원 #지질조사 #경계측량


작가의 이전글 시공 견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