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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탓 Apr 28. 2022

시공 견적

구청에 재심의를 넣고 나서 심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나는 이어지는 과정에서 시간을 아껴보려고 시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건축허가를 신청할 때 설계도를 같이 제출하기 때문에, 이 설계로 시공업체를 알아볼 수 있다. 나는 G도시건축에게 시공 후보 업체들이 연락을 할 것이니, 시공 견적을 위해 설계도를 요구하면 제공해 주라고 요청했다.


나는 집 짓기에 참여하는 여러 건축주가 공동체 주택(cohousing) 방식으로 지을 것이며, 시공 과정에서 여러 차례 워크숍과 미팅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도 전했다. 이런 조건을 함께 건네면 흔히들 여럿 시어머니와 일을 할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렇게 보일 수 있고, 효도는 셀프이듯 그건 그들의 몫이다. 설계자를 선정할 때는 다행히 C 건축사가 이 조건을 잘 이해해 주었고, 실제 설계 워크숍과 도면 작업을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었다.


소개받은 세 후보 업체에 시공 견적을 의뢰하였고, 그중 두 곳이 견적서를 보내왔고 한 곳은 포기했다. 예상 공사 금액은 각각 17.6억 원, 13.3억 원이었고, 제출하지 않은 곳은 나중에 물어보니까 15억 원 수준이었다고 했다.


채택되지 않은 다른 견적서


견적서를 받고 들여다보니, 이런 견적서를 받을 때 견적 작업비를 지불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도에 담겨있는 항목들이 워낙 많아서, 그걸 계산하고 예상해서 견적서를 만드는 작업은 겁나 복잡할 게 분명해 보였다. 두 견적서의 예상 금액 차이는 4.3억 원으로 30%가량 차이 났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총액의 차이에 비해 의외로 비슷한 구석이 많았고, 두 견적서 모두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나와 참여자들은 두 견적서를 놓고 검토를 한 뒤 13.3억 원을 제시한 T업체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T업체의 제안이 더 구체적이고 유연하다는 것, 그리고 설계 건축가를 결정할 때처럼 미팅에서 시공 견적서를 자세히 설명한 게 건축주 직접 시공 방식에 필요한 소통과 신뢰를 기대할 수 있어서였다. 집을 짓는 동안 나는 저렴한 비지떡으로 보이는 '최저가'를 우선 배제하고 나머지 '견적가'에서 주로 구매했는데, 이건 그렇지 않은 몇 건의 예외 중 하나였다.


사실 이윤 항목은 T업체로 내 마음이 간 이유였다. 다른 업체는 이윤을 2,000만 원으로 1.7%를, T업체는 이윤을 8,100만 원으로 7.0%를 제시했다. 총금액은 30% 더 비싼데 이윤은 1/4 수준이라는 게 꺼림칙했다. 회사마다 다를 것이니 이게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닐 거고, 내 생각에 이 정도 규모의 공사에서 공사비 중 7% 이윤은 더 적당해 보였다.


이제 견적서를 검증할 차례이다. 나는 건축심의를 준비할 때부터 건축을 전공한 졸업반 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구해서 몇 달간 함께 작업했다. 그에게는 주로 건축심의와 관련된 서류 작성과 시공 초기의 업무 지원을 맡겼다.


나는 그에게 도면과 견적서를 건네주며 필요한 자재의 품질과 수량이 적절한 지, 벽돌의 수량까지 자세히 계산을 해보라고 했다. 검증 작업을 맡기면서 몇 가지 걱정이 되기는 했다. 검증 결과에 견적서와 차이가 크다는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차이는 별로 없는데 검증 사실이 알려져서 시공자와 착공도 하기 전에 야릇한 불신이 생겨날 수 있어서 내 마음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검증 사실을 알리지 않고, 결과에 문제가 확인되면 그때 가서 해결 방법을 찾기로 했다.


검증 결과를 알려주며 아르바이트생은 말했다.


"별로 차이가 없는데요."


나는 겉으로 알았다는 사무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와우~ 좋네, 됐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11월 초 가을, 선정 결과를 통보하고 곧바로 밤늦게 연희동 카페에서 T업체를 만났다. 그는 이제부터 몇 개월 동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고, 이건 첫 데이트인 셈이다.ㅎㅎ 나는 시공하면서 자주 미팅을 해 줄 것, 견적서에서 특히 이윤과 인건비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수용할 테니, 약속한 자재를 잘 사용해 주고 가능하다면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사 기간을 단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추위가 오기 전에, 그러니까 12월 말까지 골조 공사를 마칠 수 있다는 꿈은 첫 번째 건축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 이미 날아갔다. 지금의 꿈은 연말까지 1층까지의 골조 공사를 하는 거다. 아직 내년 봄 입주가 가능하다.


이윤과 인건비를 무조건 인정한 건, 내가 천사 건축주이거나 건축 자금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돈을 아끼기보다 집을 잘 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다. 집이란 게 땅 속에 들어가는 기초라든지, 콘크리트 속에 들어가는 철근이라든지, 벽 속의 배관이라든지 안 보이는 게 더 많다. 승용차 하나에 2만 개 넘는 부품이 들어간다지만,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에는 20만 개 이상의 자재와 부자재가 들어갈 거고 그게 모두 로봇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토목과 골조와 조적과 미장을 하는 모든 작업자에게 일은 생계와 생존의 수단이다. 나는 그런 걸 함부로 여기거나 거론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이 우선이고 노동은 신성하다. 내가 집 짓기를 준비하며 경험자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은, '여기를 후려치면 저기서 보충하고 이거를 깎으면 그거를 빼먹는다.'는 '진리'였고,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이 집 짓기를 하면서 세상일을 많이 배웠고 나는 또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알게 된 새로운 것 중에 하나는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품처럼 집을 돈 주고 산다는 거였다. 누구나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럼 내가 직접 지으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내가 만났던 공공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어느 외국 전문가의 말은 의외였다.


"지구 상에서 살아가는 70%의 사람들이 직접 자기 집을 짓습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집을 스스로 잘 짓도록 돕는 것입니다."


 말을 듣는 순간, ‘띠옹하고 뿅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걸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산다는 나라 사람들, 그러니까 돈이  있는 사람들은 굳이 자기가 집을 짓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새집이든  집이든 구매하면 된다. 그럴 돈이 없거나, 그렇게 돈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돈에 관한  한국은 세계 10위권으로 상위 5% 들어가는 나라이고, 내가 사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세계 도시  상위 1% 해당하는 곳이다. 이렇게 고급지고 돈이 많은 곳에서 살아가다 보니 내가 지구적 차원의 보통  또는 평균값에 무감각하게 살아온 것이다. 생각할 꼭지들이  있었다.


내가 직접 집 짓기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살아갈 집을 좀 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걸 서울에서 혼자 하기는 어려우니 이런 공동체 주택(cohousing) 방식으로 부담과 위험을 줄이려고 했다. 그래서, 재주도 자격도 없는 주제에 내가 직접 도면을 그리거나 철근을 넣거나 콘크리트 타설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지는 않겠지만, 집을 짓는 데 더 참여하고 개입하려고 했다. 지구 상에서 70%의 사람들은 직접 집을 짓는다는 말을 들으니까, 뭔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그전에 세 번 집을 사고팔면서 느꼈던 '의문의 1패'가 무엇인지 조금은 더 알 수 있었다. 세 집 모두 아파트였고 내가 지내기에는 참 편리했는데, 한 번도 '이 집에서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한 아파트에서 가장 길었던 거주 기간은 5년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지어진 게 아니어서, 그리고 내가 지은 게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집 짓기에 참여하면 거기서 살아갈 때 더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진 않더라도 사는 동안에는 더 행복할 테니까.


그렇게 나는 내 집을 지을 시공업자와 사귀기로 하고 첫 데이트를 마쳤다. 데이트 상대는 이렇게 해 본 적 없지만 한 번 사귀어 보자고 한다. 내 마음에 꼬옥하고 들어온다.


#서울에서집짓기 #공동체주택 #집짓기 #시공견적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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