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반달이 되는 눈을 가진 G도시건축의 K실장은 하얀 윗니를 보이며 싱긋이 웃고는 내 말에 답했다.
"대표님, 우리는 건축신고 아니고 건축허가 대상입니다."
‘헐! 신고 아니고 허가라고?’
건축허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라면서,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어, 네. 신고라고 안 했나요?"
"건축심의에 넣는다는 걸 신고로 잘못 들으신 거 같습니다."
그랬다. 나는 왜 허가보다 쉽고 간단한 신고라고 생각해 온 것일까. 하아, 내가 중요한 핵심어를 놓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었나 보다. 잘못 들어놓고는 내 맘대로 해석해서 기억을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설계 워크숍을 하다가 K실장이 빠른 건축허가를 위해 구조심의를 피하는 게 좋고, 그래서 일층 이층 일부에 기둥을 사용한 벽식구조로 한다고 설명했던 장면이 기억났다. 그땐 설계를 빨리 마치려고 애쓰는 실무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지, 신고인지 허가인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머리는 왜 마음에 휘둘리는 게냐 나란 사람은.
K실장은 굴러가는 명랑한 목소리로 나를 참교육 했고, 나는 얌전히 앉아 참교육을 받으려 했지만 건축심의가 길어져서 겨울이 오기 전에 골조공사를 끝내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 가라앉지 않는다. '어이 상실이네, 넌 왜 그 모양이야! 이제 어쩔, 허가면 기간이 늘어나서 겨울 공사해야 하는 거 아냐?'
걱정은 컸으나 다행히도 나의 착각은 설계 작업과 건축심의 일정에 별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K어집 부모들은 널찍한 1층 빈 공간에 큰 방, 작은 방, 주방, 사무실, 창고를 아기자기 배치하며 설계를 마쳤다. 그들은 1층의 실내면적을 약간 아쉬워했지만, 어린이집 인가요건에 딱 들어맞는 면적을 확보하면서 별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다. 나머지 층에서는 큰 변화 없이 자기 집의 평면을 조금씩 수정해갔고, 나는 내 집과 엄마 집의 설계를 팽개쳐 놓고는 설계 워크숍과 건축심의 진행에 집중했다.
9월 건축심의위원회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헤어지고 엎어지는 난리통을 겪은 직후라 나는 쪼그라든 맘으로 통과를 기원했다. 10월에 착공해서 시원한 가을 날씨에 골조공사를 서두르면 어쩌면 12월에 공사 진도를 많이 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것 또한 초보 건축주의 꿈이었다. 9월 건축심의 위원회의 결과는 보류였다.
건축심의위원회의 설명은 단 한 줄이었다.
어떻게 어울리지 않는지, 어느 부분을 변경하라는 지 한 마디가 없다.
집 짓기는 행정과의 끊임없는 소통이다. 나는 땅과 건물에 들어가는 공적인 개입과 규제에 찬성하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땅과 집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전세라는 관행이 있는 등 독특한 우리 집 문화에서, 행정규제는 성가시거나 귀찮은 무언가로 느껴질 수 있다. 나는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는 근원인 대지, 그리고 누구에게나 안전한 생존에 꼭 필요한 집에 대한 공적인 개입은 개인의 자유, 특히 개인의 재산권과 충돌하더라도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집을 짓는 마당에 건축 허가와 관련된 온갖 과정에 나는 충실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미관지구라는 취지를 고려하여'라는 추상적인 문구는 참 난감했다. 심의 결과를 가지고 J부소장과 K실장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
그들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없이 헛웃음만 켠다. 몇 번을 구청 담당자와 만나려고 시도를 해서는 바쁜 담당자와 힘들게 약속을 잡아서 마주 앉아 담당자에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담당자는 진행하는 실무를 하지 심의하고 결정하는 건 심의위원들의 몫이라, 그는 결과를 알려주는 것 말고는 내게 말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같이 심의에 들어갔다가 보류된 다른 사례를 보니까, 그 건에서는 창문의 줄이 안 맞는다는 게 이유였다. 창문은 줄을 잘 맞춰야 한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유심히 살펴보니 왕복4차선의 25미터 도로 변이라 그런지 몰라도 건물의 창문들이 성냥갑처럼 하나같이 줄을 잘 맞춘 모양새다. 내 설계에선 그게 안된다.
이 집 짓기는 지상의 모든 층마다 설계가 제각각이라 그런 입면이 불가능하다. 10월 건축심의에서 또 보류되면 빨라야 12월에 착공인데, 그건 내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G도시건축은 1층 창문과 건물의 색상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나는 구청 담당자에게 이 건물의 층마다 호실마다 평면이 모두 달라서 창문의 줄을 맞추는 게 불가능한 사정을 심의위원들에게 꼭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재심의를 넣었다.
나는 한 번의 재수 끝에 시월말 건축허가를 받았다. 일층에 중식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둥근 창이 추가되고, 살짝 밝은 색상의 옷을 입은 설계도가 공식화됐다. 삼월 초 설계 워크숍을 시작한 지 일곱 달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