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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탓 Apr 23. 2022

엎어지고 다시서기

한 번 헤어지고 엎어진 나는 망하기 전에 뒤집기를 해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내가 살 길은 어떻게든 한겨울이 되기 전에 골조공사를 끝내는 거다. 참여자들은 이미 다음 해 봄 즈음 새집에 이사를 들어가려고 살던 셋집을 내놓고 입주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한파 오기 전에 골조공사를 마감하고, 추운 겨우내 설비와 마감공사를 하면 봄에 입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럴 땐 누군가 귓속 말로 말하는 것 같다.


'그건 초보 건축주님 생각이구요.'


그러려면 이대로 공사를 시작할 수 없으니 빈자리를 먼저 채워야 한다. 삼층부터 육층까지 일곱 가구는 한 번 설계가 끝나서 일층의 도면을 크게 바꾸기는 어렵다. 이 건물에서 가장 좋은 자리인 일층에 상업시설을 들이는 것은 공동체 주택이라는 정체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단체나 기구, 또는 사회적 경제기업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근처 부모협동조합이 운영하는 K어린이집을 만났다. K어집은 이 집 짓기를 준비하는 초기의 막바지에 참여를 저울질하다가 안 하기로 한 적이 있었다. 최종 참여자의 세 배 수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참여자 모임을 드나들었기에, 그때는 그저 한 번 더 그런 일이 생기는 정도라고 여겼다. 부모협동조합은 드물게 협동조합답게 운영되는 곳이고, 집짓기 모임보다 두 세 배 밀도로 의사 결정을 하는 곳 인지라, 그들의 결정에는 뭐라고 토를 달게 없었다. 그랬다가 일 년 몇 달이 지나서 이 사업이 제대로 엎어진 때, 어집의 임대인이 갑자기 나가 달라고 요구를 해서 K어집이 이사할 새 터전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렇다면 이것은 혹시 헤어진 교회와 어집의 임대인이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


K어집은 공동육아방식의 어집이어서, 만일에 새 터전을 구하지 못하면 그 부모들은 대략 난감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엄마 아빠가 하루씩 번갈아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보거나, 큰맘 먹고 염치없이 양가 부모에게 맡기거나, 아예 새로운 어집으로 옮기거나, 매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공동 보육을 하거나. 무엇하나 좋을 게 없는 비호감 상황이다.


일 년 여 전에는 같이 안 하겠다던 K어집은, 다른 참여자들처럼 다음 해 봄 입주가 가능하다면 집 짓기를 함께 하겠다고 했다. 사실은 어집 임대인이 시한을 정해 놓고 나가라고 이미 닦달을 하고 있었다. 부모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임대인과 협상을 하면서 싸움도 하는, 소위 양동작전을 수행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집짓기 공사는 아직 설계도 미완성이고 건축 신고를 하기 전인데 공사를 마치고 입주하는 다음 해 봄까지 지금 어집에서 버티겠다는 거다. 그런 청년 부부들의 대담한 협상력과 신박한 전투력을 보면서 나는 내가 퇴물이 되었음을 자각했고, 혼자 속으로 다짐했다.


'헐, 이 집 짓기를 끝으로 일에서 손을 떼어야겠군. 저런 사람들이 뭐든 쥐고 가야지, 아무렴.'


라떼 이야기. 1998년 IMF 구제금융으로 모든 게 혼란스럽던 시절에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K어집 부모세대, 소위 MZ세대는 이전 세대들에 비해 유래 없이 낯설고 불친절해진 세상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높은 금리와 환율과 물가, 확 줄어든 안정적인 일자리, 잠시 머뭇거리다가 치솟는 집값, 이전 세대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고 쉽게 이루어지던 많은 것들이 MZ세대에게는 더 많은 시간과 품과 정성을 들여야 가능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나보다 더 정교하고 높은 수준의 생존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층에 K어집이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휴우, 한숨 돌리고 불안감 씻어내고 웃으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어집이 합류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건 일층의 설계였다. 무려 5미터까지 높아졌던 일층의 층고는 3미터로 정상화되었고, 대지와 입구의 높이차 때문에 어집의 주출입구를 건물 뒤편으로 옮겼다. 어집이 부여한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었는데, 시간을 끌며 이사를 미뤄볼 수 있다는 거여서 준공 시점이 다음 해 4월 말로 정해졌다. 꼬맹이들의 안전을 위해 일층의 창문들은 조금 더 높아졌고, 크지 않은 공간을 쪼개고 나누며 노유자 시설인 어집의 까다로운 인가요건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들 능력자들은 모든 걸 알아서 해결했다.


그리고 숨어있는 작지만 내게는 커다란 걸림돌도 제거됐다. 공사를 맡은 현장소장이 비어있던 한 집을 자신의 부모님을 위해 분양받겠다고 했다. 소장은 생전 처음 보는 집짓기 준비 과정을 살펴보다가 관심을 갖더니 빈집이 있다는 걸 알고는 그리 하겠다고 알려왔다. 와우! 큰 고비를 넘어서자 어두컴컴하던 미래가 갑자기 터널을 빠져나와 햇빛 짱짱한 길로 들어섰다고나 할까. 그 한 집은 교회의 목사가 자택으로 쓰려고 들어오기로 했다가, 교회와 헤어지는 날 "집은 못 들어가는 건 아시죠?"라는 한 마디 통보에 빠진 이처럼 남아있었다. 당장은 사업을 진행해야 해서 원하지도 예상치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떠안았던 집이다. 떠안게 된 집인데 내가 들어가 살 집보다 크다.ㅎㅎ


초보 건축주가 직접 집 짓기를 한다는 건, 여러 번 엎어지고 넘어진다와 같은 말일지 모른다. 내가 크게 엎어진 게 세 번, 작게 넘어지고 자빠진 게 서너 번? 겨우 일어서기만 하던 아기가 첫걸음을 떼고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과 살짝 닮았다. 다르다면 걸음마를 배울 때 아가들은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이고, 나의 집 짓기는 마냥 복잡하고 느끼하고 징글징글할 뿐이고.


엎어졌다 다시 못 일어나면 어떻게 되냐고? 망하는 거다. 뭐 집짓기 하다 망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또 계속 살아가게 될 거고, 엎어지는 건 그에 비해 훨씬 나은 거다. 망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뒤집기를 시도할 수 있다.


우리 현장 아래쪽으로 두 번째 블록 골목 안에 허름한 공사 가림막이 둘러쳐진 건축현장이 있었다. 2층까지 골조가 올라간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돼 비바람을 맞은 콘크리트는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좀비 건물이었다. 가림막 안쪽에 쌓인 쓰레기는 '닥치고 그냥 알아먹어라!'며 많은 걸 알려주었다. 공사를 시작하고 좀 지났을 때 현장소장과 점심밥을 먹고 걸어오다가 그 좀비 건물을 지나며 내가 물었다.


"이런 건 어떤 경우예요?"

"둘 중 하나, 건축주가 돈이 없어서 멈추든지 시공업체가 공사비를 떼어먹고 도망가든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소장은 그렇게 압축해서 한 마디로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내가 여행을 하다가 본 좀비 건물들이 주욱 떠올랐다. 주로 길가에 가깝게 또는 조금 멀리 골조공사를 하다가 가림막조차 없이 죽어있는 좀비 건물들을 꽤 보아왔다. 좀비 건물은 아니지만 좀비 같은 건물도 많았다. 공사를 마쳐 멀쩡한 건물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좀비 아닌 건물도 적지 않았다. 가깝게는 신촌 민자역사가 그랬다. 신촌M이라는 8층짜리 널찍하고 큰 건물은 공사를 마친 뒤 오래도록 개장을 못하고 있었다. 희한하게 건물 대부분에는 '유치권 행사 중' '출입금지'라고 돼 있고, 일부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영업 중이었다. 적어도 일 년 전 내가 영화를 보러 갔을 때까지는 그랬다. 한 건물에서 망한 건축주와 망하지 않은 건축주가 공존하는 묘한 풍경이었다. 어쩜 그곳이 살아있는 듯 죽어있는 찐 좀비 건물인지 모른다. 내가 짓는 집에 저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


샀던 땅을 팔고 그냥 헤어질 뻔하던, 그래서 망할 뻔하던 집 짓기는 새로운 참여자와 함께 이렇게 시즌2를 맞이하게 됐고, 시즌2는 시즌1보다 더 탄탄하고 안정된 합체를 이루었다. 당분간은 말이지,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게 아니니까.


설계 워크숍이 재개되고 나는 다시 건축 신고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집짓기 #엎어지고다시서기 #공동체주택 #집짓기 #건축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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