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쇼트의 주인공, 이번엔 팔란티어를 겨냥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전설이 된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가 또 다시 시장에 경고음을 울렸다. 그의 최근 13F 공시 자료에 따르면, 14억 달러(약 1조 9,600억 원) 규모의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AI 열풍의 중심에 있는 두 기업, 팔란티어(Palantir)와 엔비디아(NVIDIA)에 대규모 풋옵션을 매수했다.
풋옵션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이다. 버리는 팔란티어에 9억 1,200만 달러(약 1조 2,768억 원), 엔비디아에 1억 8,700만 달러(약 2,618억 원) 상당의 풋옵션 포지션을 구축했다. 합치면 11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로, 이는 그의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80%에 해당한다.
버리는 최근 X(구 트위터)에 AI 버블을 경고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때로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승리 전략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1999-2000년 닷컴 버블 시절의 IT 투자 규모와 현재 AI 관련 자본 지출을 비교한 차트를 공유했다.
팔란티어는 올해만 141% 급등한 AI 데이터 분석 기업이다. 정부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방위·정보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9분기 연속 실적 예상치를 상회하며 연간 매출 가이던스를 44억 달러(약 6조 1,600억 원)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버리는 이 모든 것이 과대평가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팔란티어의 주가-매출비율(PSR)은 116배에 달한다. 닷컴 버블 당시 최고 인기 기업들도 30-40배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밸류에이션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알 수 있다.
공매도 전문 기관 시트론(Citron)도 지난 8월 팔란티어의 적정가를 40달러(약 5만 6,000원)로 제시하며 공매도 리포트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주가는 150달러 선이었다.
엔비디아 역시 올해 42% 상승하며 시가총액 5조 달러(약 7,000조 원)를 돌파한 AI 칩 시장의 절대강자다. 하지만 버리는 이 역시 과열이라고 판단했다. 엔비디아의 PSR도 30배를 넘어섰는데, 역사적으로 이 수준은 메가캡 기업들이 지속하지 못한 천장 구간이었다.
버리가 X에 공유한 또 다른 차트는 엔비디아, 오픈AI, 오라클 등 빅테크 기업들 간의 순환 투자 구조를 보여준다. AI 기업들이 서로에게 투자하며 수익을 부풀리는 '순환 금융(circular financing)'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AI 하락에 베팅한 것과 대조적으로, 버리는 전통 산업에는 상승 베팅을 걸었다. 화이자(Pfizer) 콜옵션에 1억 5,300만 달러(약 2,142억 원), 할리버튼(Halliburton) 콜옵션에 6,200만 달러(약 868억 원)를 투자했다. 제약과 에너지 섹터에 대한 방어적 포지셔닝이다.
그 외에 룰루레몬(Lululemon), 몰리나 헬스케어(Molina Healthcare), 샐리 메이(Sallie Mae) 등 소규모 주식 포지션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의 비중은 미미하다. 버리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AI는 거품이고, 곧 터질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버리는 역사적으로 "너무 일찍 옳은" 투자자로 유명하다. 서브프라임 위기 때도 2005년부터 베팅을 시작해 2년 넘게 손실을 감내한 끝에 2007년 대박을 터트렸다.
13F 공시는 9월 30일 기준이므로, 버리가 정확히 언제 어떤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했는지는 알 수 없다. 3분기 동안 팔란티어는 129달러에서 190달러 사이를 오갔고, 엔비디아도 변동성이 컸다. 만약 3분기 초반에 매수했다면 현재는 손실 상태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버리는 자신의 X 바이오에 11월 25일 새로운 발표를 예고하고 있다. SEC 등록이 11월 10일자로 해지된 것으로 보아, 헤지펀드 규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투자 활동을 시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은 갈림길에 서 있다. AI 낙관론자들은 이번이 닷컴 버블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당시 인터넷 기업들은 매출도 없이 비전만으로 주가가 폭등했지만, 지금의 엔비디아와 팔란티어는 실제 매출과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버리 같은 회의론자들은 숫자를 본다. PSR 116배, 30배라는 밸류에이션은 어떤 성장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과 AI 성장 스토리가 단기적으로 주가를 떠받칠 수는 있지만, 역사는 이런 밸류에이션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왔다.
흥미로운 점은 버리 본인도 언론 보도를 정정하며 실제 투자 금액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는 팔란티어 풋옵션에 9억 1,200만 달러가 아니라 단지 920만 달러(약 129억 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13F에 기재된 9억 달러는 기초자산의 명목 가치일 뿐, 실제 옵션 프리미엄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2027년 만기 행사가 50달러인 풋옵션 5만 계약을 개당 1.84달러에 매수했다.
한줄평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엔 마이클 버리가 틀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