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향수가 만든 27억 달러 부활 스토리
2015년 애버크롬비 앤 피치(Abercrombie & Fitch)의 두 브랜드는 명확한 서열이 있었다. 형 애버크롬비는 약 18억 달러(약 2조 5,200억 원), 동생 홀리스터(Hollister)는 약 19억 달러(약 2조 6,600억 원)로 비슷했지만, 애버크롬비가 프리미엄 포지셔닝으로 더 중요한 브랜드였다.
그러다 2020년 애버크롬비는 바닥을 쳤다. 약 13억 달러(약 1조 8,200억 원)까지 추락했다. 홀리스터도 18억 달러(약 2조 5,200억 원)로 하락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타격을 받았다.
2025년 현재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홀리스터는 27억 달러(약 3조 7,800억 원)로 치솟았고, 애버크롬비는 25억 달러(약 3조 5,000억 원)로 따라왔다. 10년 만에 동생이 형을 추월했다.
홀리스터를 2000년대에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어두컴컴한 조명, 상의를 벗은 남자 직원들, 귀가 찢어질 듯한 팝송. 2010년대 중반 이 모든 게 사라졌지만, 브랜드의 DNA는 남았다.
그리고 2025년, 그 DNA가 무기가 됐다. 홀리스터는 올여름 Y2K(2000년대 초반) 부활 컬렉션을 출시했고, 최근에는 타코벨(Taco Bell)과 협업한 2000년대 감성 제품을 내놨다. iPod, 유선 이어폰, 프로요(froyo), 배기 진(baggy jeans)이 다시 유행하는 시대에, 홀리스터는 딱 맞는 브랜드였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타코벨 협업 발표 다음 날,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시장 기대를 훨씬 넘는 실적을 발표했고 주가가 급등했다. 홀리스터의 성장이 다시 한번 애버크롬비 옷장의 핵심 아이템임을 증명한 것이다.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딜레마에 직면했었다. 초창기 고객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10대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원점을 지키며 오늘날 10대들을 계속 붙잡을 것인가?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둘 다 했다. 애버크롬비 브랜드는 남성복과 여성복 라인을 다각화하며 이제 가족을 꾸리고 집을 사는 성인 고객층을 공략했다. 홀리스터는 Z세대에 올인했다. Z세대 아이콘인 벤슨 분(Benson Boone)을 프로모션 캠페인에 기용하고, 인플루언서 프로그램에 투자하며 젊은 소비자 타겟 제품군을 키웠다.
결과는? 파이퍼 샌들러(Piper Sandler)의 2025년 초 조사에 따르면, 홀리스터는 "여성 10대를 위한 1위 의류 브랜드"가 됐다. 나이키(Nike)의 지배력을 깨뜨린 것이다. 애버크롬비 앤 피치의 브랜드 현대화 노력이 먹혔다.
트렌드 사이클은 계속 돌고, 2000년대가 다시 왔다. 홀리스터는 그 파도를 정확히 탔다. 애버크롬비는 어른이 됐고, 홀리스터는 여전히 10대다. 그리고 2025년, 10대가 이기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게 단순한 향수 마케팅이 아니라는 점이다. 홀리스터는 실제로 제품을 현대화했다. 어두운 매장은 밝아졌고, 상의 벗은 직원은 사라졌으며, 음악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은 유지했다. 2000
년대 해안가 캐주얼 감성은 살아있다.
문제는 이 향수가 얼마나 갈 것인가다. 트렌드 사이클은 빠르다. 2000년대가 지나면 2010년대가 올 것이고, 그때 홀리스터는 또 다른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승리의 순간이지만, 패션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2000년대가 다시 유행이라면, Z세대는 결국 밀레니얼의 10대 시절 옷을 사 입고 있는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