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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커피 이야기

비굴함에 대하여 - 2

by Coffee Sustainabilist

(앞에서 이어서…)


그 후 우리 현지직원이 기시타조합이 작성한 사과 레터 초안을 번역해서 내게 보여줬다. 사실 위에 우리가 요구한 조건은 협동조합이 거절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조합이 아름다운커피에게 이걸 해야할 의무가 있는 종속 관계는 아니니까. 그래서 사실 걱정도 되서 조합 임원들에게 위의 조건을 수용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아름다운커피의 지원도 없다고 강하게 못박았지만, 작성해온 사과레터를 보니 가슴이 착찹하고 바닥까지 비굴해져버린 농부들의 자존심이 떠올라 나도 가슴 한구석이 서러워진다. 레터의 글귀 하나하나가 비굴하고 애절하다. 1,2,3,4 저희가 이렇게 잘못했습니다.... 농부들이 쓰는 반성문이다. 물론 조합이 잘못을 했고, 비즈니스 계약사항을 어겼기 때문에 RTC의 요구는 정당하고, 이 레터가 수용된다면 지금상황에서는 더없이 좋은 결과이다.



그런데 한줄 한줄 읽는 마음은 편치 않다. 새로 선출된 임원과 조합원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풀이 죽었고, 고소를 하자던 기개는 이미 사라졌다. 자기들의 커피가 좋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니 그간 자부심도 생겼었겠지. ‘RTC 없어도 우리 잘 팔 수 있어!’ 라는 말도안되는 기개가 있었겠지만 곧 현실을 알게 되었겠지. 12월까지 우리 말도 잘 안듣던 조합 새로운 임원들은 이제 스스로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하고 이 레터를 쥐고 우리를 찾았겠지. 어떻게 보면 바른 과정인건데, 이 레터를 쓰며 자존심이 무너졌을, 현실을 깨달았을 농부들을 생각하니 한구석 마음이 저려온다. 우리 커피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배우고 가진 것 보다 더 영리해져야 하는 현실임을, 배우지 못하고 평생 나무만 키워온 아프리카 농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 비굴함을 이들에게 사주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지금 사실 내 심정은 내가 그간 뒤에서 욕해대던 RTC와 우리가 MoU라도 맺어서라도 기시타조합의 거래를 다시 회복시키고 싶은 마음인데, 한편 씁쓸해진다. 그리고 그거라도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하면 난 할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좋은 커피를 들고도,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내몰았을까. 왜 이들이 이렇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4개 커피협동조합과 일을 시작하면서 각 조합마다 하나씩 문제가 생겼다. 순서대로 하나씩. 비샤자 커피 조합은 우리의 지원과 더불어 2018년 르완다 시즌 상황으로 그간 잘 거래하던 도르만으로부터 선급금을 주지 못하겠다는 소식을 통보받았다. 이건 비샤자 조합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공급자에 대한 도르만 기업의 공통된 조치이다. 비샤자 조합은 그래도 똘똘한 조합이라 우리에게 손 안벌리고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쿠카무 조합은 품질도 좋고 거래도 좋고 영리한 임원들이 있지만 회계관리가 엉망징창이라 맨날 잔소리 듣고, 이번에 조합장이 갑자기 건강문제로 급사했다. 카로라 조합은 공정무역 인증과 멤버십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번에 조합원 멤버수가 늘어나자 그간 스스로 투입한 빚을 보전하러 신규 유입된 멤버들에게 멤버십 피를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올렸다가 우리가 엄청 설득하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렸다. 그래도 이정도는 다 애교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시타 조합이 대형 사고를 치고 이제 수습이 될 수 있을지 두고봐야 할 상황이다.


애초에 개도국 커피 농부들이 스스로 비즈니스를 하는 꿈은 불가한 것일까. 가끔 좌절할땐 이런 생각도 든다. 이들에게 스스로의 비즈니스를 하라는, 당신들의 권리를 찾으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정당하고 현실적인가. 매번 물어보기도 한다. 사실 비즈니스는 더 냉혹하고, 언제든 필요하면 무릎꿇을 수도 있어야 하니까. 당연한거 아니겠어? 그게 안되면 비즈니스 안하면 편해. 이게 맞는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고 ‘그럼 너희는 안되니까 그냥 스스로는 하지마..’ 라고 하는 건, 더 최악의, 말도 안되는 상황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안될 것 같은걸 되게 해보려 좌충우돌 하는 것이겠지.


이 문제가 해결되면 정리해서 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최소 한 두 달 이상 걸릴 것 같아 그나마 하나의 변곡점을 이룬 오늘 적어두기로 한다. 오늘 하루도 참 고되었다.


#lifeinRwnada #rwanda #beautifulcoffeerwanda #GishyitaCoffee

All photos by 공감아이/임종진


- 이 글에 이어 썼던 에필로그, 기억하기 위해 - 비굴함에 대하여, 에필로그 - 사적인 이야기.


2019년도 나는 참… 해맑고 순수했나봄(?)


사실 지난 번에 장문의 세 편의 글을 페이스북에 쓰면서 고민도 되었습니다. 제가 르완다 현장에서 진행하는 일들에 대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에게 어떤 성격의 정보가 전달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냥 제가 제 기분에 못이겨 싸질러대는...(이라는 천박한 표현을 써서 죄송) 내용만으로가 아닌, 읽고 코멘트 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때로는 잔소리도 해 주실 감사한 지인분들도 제 글 주변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례를 대하는 제 스스로의 마음상태를 볼 때도 이미 그러한 관심들을 일일이 소화할 수 있을까 솔직히 스스로 걱정도 좀 했습니다. 공적자금으로 '비즈니스' 형태의 개발협력을 진행하면서, 제 지극히 주관적이고 솔직한 감정과 가치판단들이 반영되어 써질 글이 분명하니까요.


또한 제가 일하는 곳에 대해 씌워질 오해의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나름 비즈니스하는 조직에 속해 있기에, 보여지는 이미지의 영향과 중요성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데 왜', '한계가 처음부터 보였지'. '쉽지 않은 길', '애쓰는 마음은 알지만 거시적인 상황에서는 한계가 명확한', ‘원래 조합과 일하는 것은 그런’... 뭐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있는데, 저는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또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거기다 또 괜히 나의 이런 주관적인 이야기들로 인해 이들에게 선입견을 씌우는 것이 아닐까, 제가 하는 활동의 내용과 달리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진 않을까 하는 한편 과하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거든요.


오늘은 프로젝트 활동으로 마침 르완다에서 열리는 Africa Fine Coffee Association (AFCA) 2019 Exhibition에 아름다운커피 르완다 이름으로 참여했습니다. 대부분 저보다 르완다 현지직원들이 스스로 부스 참여를 준비했고, 직원들도 처음 경험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매 순간순간을 학습하고 깨닫고 더 배우려 애쓰는, 더 열심히 해서 스스로와 같은 르완다 커피 농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 애쓰는 현지직원들의 마음을 보며, 저도 절로 다시 힘을 내어 같이 뛰었습니다.


비즈니스든, 개발협력 사업이든, 아프리카에서든, 한국에서든 사람 먹고사는 모습은 어디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크게 달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썼던 글에서 썼던 표현과 비슷한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요. 아프리카에서 농부들과 함께 어떤 관점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려는 저도 있지만, 한국이라는 발달된 사회와 국가에서도 살아남으려 애쓰는 하루하루도, 어떤 관점에서는 같은 선상의 불가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한국에서도 이미 꽤 안정된 사업을 하시면서도 매일처럼 한숨짓는 분들, 그리고 묵묵히 살아내는 분도 있고, 좌충우돌 더 힘들게 무모한 분들도 있듯이 말이죠.


또한 매크로한 커피산업의 측면에서도 어쩌면 저와 같은 이들의 움직임은 아주 미미한 파장조차도 안될지도 모르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닌 이상 큰 소용은 없다 싶을 수도 있지만요. 미미하더라도 그 파장을 만들어 보는 것도 때로는 의미 있지 않을까, 사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으로 무모함으로 시작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비즈니스의 정석으로 보면 스스로는 답이 없어 보이는 개발도상국 농부들이지만, 점점 스스로의 힘을 일깨워가고, 힘을 가져가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영민해지고 노련해져가는 과정을 함께 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세상은 이런 것을 임팩트(impact)라는 표현으로 조금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저도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포장할 수도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작은 파장을 저도 함께 직접 경험해서 진실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곧 죽을 것 같이 썼어도 저희 조합 농부들은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어려움과 함께 살아갈 겁니다. 이들에게 이미 이런 어려움은 하루이틀이 아니었고, 사람의 생명력은 가끔은 놀랍게 참 강인해서, 지금껏 살아 남아온 농부들이니까요. 물론 가끔 실제로 죽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저희 조합보다 더 말도 안되는 조건에서 커피를 키우는 농부들이 제가 있는 아프리카 르완다만 해도 허다하고, 다른 곳에도 제가 아는 한 더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커피를 마시는 우리들도 하루하루 허덕이고, 때론 비참하고, 비굴하고 힘들어 하기도 하며 살아가기도 하잖아요.


그렇다고 이들이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이러이러해서 이들이 괜찮지 않고, 이건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하고 있어요’ 라는 이야기보다, ‘이게 맞는 건 아는데, 그런데 정말 이게 맞는 걸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주신 의견과 메시지에 일일이 답변 못 드려 죄송하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날 것 그대로 커피 농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드리는 것이 때로는 필요할 것 같아 긴 글로 게시물을 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 ’원래 그래요’ 등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하니 답답하고 안쓰러워 해주시는 마음도 감사하고, 냉정하게 분석해주시는 분들도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제 활동을 한 텀 정리할 시점이 오는 것 같다는 스스로의 반성도 됩니다. 너무 밀착해서 사랑하며 지내다보니 객관성이 장점인 제가 종종 감성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요즘 많이 발견하거든요.


저부터도, 우리모두 참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세상은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기도 하고, 이런 데서 우리가 요즘 이야기하는 ‘혁신(Innovation)’이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나름 벌려놓았던 긴 글을 닫는 글로 또 길게 주절거렸지만, 또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프리카 르완다 좌충우돌 1년을 잘 정리하며, 희망찬 모드로 회복해보도록 하겠습니닷!


p.s.

브런치에 과거 사진까지 올리며 페이스북 친구공개 글을 옮겨쓰긴 처음이지만, 잊고싶지 않았던 고민이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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