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커피 6월호 기고
오늘날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흔하고 익숙하다. 택배 포장박스부터 포장지, 제로웨이스트와 노 플라스틱과 같은 단어는 이제 새로운 말이 아니다. 커피업계에서도 생두, 조달, 로스팅 공정 및 부자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제품과 비즈니스 활동이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책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베리파이드 마켓리서치(Verif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2023년 지속가능성 커피의 시장점유율은 북미 약 38%, 유럽 30% 아시아태평양은 약 20%에 이르렀다.
기업 입장에서 이는 단순한 마케팅 수단을 넘어, 소비자와의 신뢰를 구축하고 차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커피를 고를 때 지속가능성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제는 지속가능성을 강조하지 않는 브랜드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다.
이렇게 익숙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는 어떨까. 지속가능성의 개념은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의 인식에서 처음보다 더 다층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엔 환경 보호가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생산자 공동체의 생계, 노동자의 권리, 공급망의 구조적 불균형, 경제적 회복력 등 경제와 사회적 측면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1987년 UN총회에서 설립한 세계환경개발위원회(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WCED), 일명 브룬트란트(Brundtland Commission)위원회는 지속가능성을 "미래 세대의 필요를 해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후 지속가능성에서 환경이 첫 번째 이슈로 주목을 받았지만 점차 사회와 경제를 포함한 세 축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의 물류대란과 계속되는 커피 가격 급상승, 기후변화와 생산성, 품질, 그리고 생산지의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겪으며 이제 지속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커피 생산은 그동안 숲의 파괴,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 공정하지 않은 거래 구조 등의 문제를 거듭 동반해왔다. 특히 소농 중심의 커피 생산지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현실적인 커피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때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인식을 넘어 생산자 공동체, 생산자의 권리와 역량, 장기적인 생존 전략까지 아울러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피로감과 회의도 동시에 생겨난다. 인증 마크와 지속가능성, ESG 보고서는 넘쳐나지만, 실질적으로 지속가능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나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일명 '그린워싱(green-washing)'의 위험과 그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점점 커지면서 지속가능성을 앞세운 브랜드에 근거를 묻는 소비자가 늘었다. '과연 이 상품의 지속가능성은 진실한가'라는 의구심과 함께 말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이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을 포함한 다양한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환경과 인권, 공정노동 등의 문제를 명확한 데이터에 기반해 보고하고 개선 노력을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에게 부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업계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인증 역시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지나치게 복잡한 인증 체계나 소비자와의 소통 부족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인증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도구가 된다. 인증의 한계와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활발히 논의가 진행된다.
인증이 아닌 기업 자체적으로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경우라도 투명한 정보 공개와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지속가능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가치사슬 모두의 협업과 실천이 필요하다. 공급망의 어느 한 축, 어느 한 행위자만 노력해서는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소비자, 생산자, 기업,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U의 산림벌채금지법(EUDR)이 발효됐을 때 커피산업에서 이를 반기기보다 유예를 요구하는 모습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응해 구성된 VOCAL(Voice of Organizations in Coffee Alliance) 연합은 실질적인 규제 이행을 촉구하며 산업의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래에서 위로의 변화, 즉 생산자와 노동자,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와 요구도 가치사슬 전체의 산업 변화에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궁극적으로 지속가능성은 브랜드의 마케팅 문구가 아닌,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매일의 운영 속에 뿌리내린 지속가능성,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 이해관계자와의 신뢰 기반이 함께해야만 한다. 단순한 데이터 수집과 상품 설명을 넘어 현장의 현실에 맞춘 핵심 목표와 지표를 설정하고, 변화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일년 중 절반이 되어가는 여름, 잦아지는 산불과 치솟는 커피 가격, 이 모든 산업과 사회에서 부는 요동의 중심에는 지속가능성이 있다. 분명 서로 변화를 만들고 함께 풀어야 개선이 가능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