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커피협동조합 소농 이야기
2019년 3월, 케냐 나이로비 ICO 협의회에서 세계 커피생산자 포럼(The World Coffee Producers Forum, WCPF) 조정그룹의 컨소시엄이 열렸다. WCPF는 커피 공급사슬에서 특히 생산자가 직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 포럼으로, 2017년 7월 40여 개 국가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하며 콜롬비아에서 처음 발족됬다. 2019년 브라질로 예정된 두 번째 포럼을 두고 열린 케냐 ICO 협의회에서 커피 가격 위기(Price Crisis)에 대한 선언문이 논의되고 채택되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계 커피 생산자 포럼 조정협의회 선언문(나이로비, 케냐 / 2019-03-26, 글쓴이 역)
극단적으로 낮은 국제 커피 가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위기는 커피 가치 사슬 행위자 전체가 심각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는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국제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 ICO)에 따르면 대부분이 소농인 약 2천5백만 가구가 전세계에서 커피를 생산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커피농부들은 생산비를 충당할 수 없으며 이들 대부분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중략)
오늘날의 C 선물거래는 흔히들 "센트럴(Centrals)"로 칭하는 '동일한 품질의 마일드 아라비카 커피 한 바구니'에 대한 준거가격 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여러 변화를 거치게 된 오늘날 C 선물거래 기반 가격은 여러 요인들로 인해 생산자들의 생산비용을 충당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헤지펀드들의 투기도 이러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중략)
커피 생산자들의 현재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위기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되기 전에 해결되어야 합니다. 가치 사슬의 모든 연결 고리들이 수익성과 건강함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공동 책임 원칙과 투명성 원칙에 입각한 접근 방식을 구현해야 합니다. 비록 커피가 위대한 음료로 귀결되더라도 사람들과 토지의 존엄성, 가치 또는 복리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렇게 한다면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커피가 될 수는 없습니다.
ICE(Intercontinental Exchange)는 이 논의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의 커피 농민들은 그간 수년간 생산자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집단적, 건설적, 현실적 접근방안을 바라며 나머지 가치 사슬 행위자들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응답은 매우 약했습니다.
커피 생산자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에 관해서는 명확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Daily Coffee News 원문 http://bitly.kr/32N25sFOoK
2019년 커피 생산자들이 이런 선언을 채택한 배경으로는 2018-19년 커피가격 폭락이 있다. 커피 거래는 일반적으로 선물거래 가격인 C price를 기준으로 진행되는데, 2018-19년 가격은 40년 전의 가격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까지 떨어졌고, 급기야 2019년 초 1달러 선이 붕괴되며 생산자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ICO와 SCA 등 커피 업계 다양한 곳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2018년 스타벅스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고자 2천만 달러를 중앙아메리카 커피 농부들의 위기극복을 위한 지원금으로 투입하기도 했다.(http://bitly.kr/vrU7dmRciz)
그러나 커피가격위기(Coffee Price Crisis)는 결과적으로 스타벅스가 긴급하게 지원한 중앙아메리카 외에도 전세계 커피 농부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영향에 대해 르완다 소농협동조합들의 이야기로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고자 한다.
르완다 서쪽 지역(Western Province) 카롱기(Karongi) 구(District)에 위치한 기시타 커피(Gishyitha Coffee) 협동조합은 89명의 커피 농부들이 2010년 설립한 작은 커피협동조합이다. 설립된 후 지금까지 르완다 내수 생두기업에 커피 파치먼트(parchment)를 판매하고 있다. 아름다운커피는 2017년 12월 처음 이 조합을 방문했고, 조합이 이전에 Kivu Arabica Coffee(KAC, 현재 Dorman Rwanda의 전신기업)와 거래하며 조합이 겪었던 많은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2010년 설립 당시 KAC는 현지 NGO단체와 찾아와 농부들에게 커피 생산을 위한 협동조합을 설립하라고 설득하고 자기들이 가공시설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농부들은 이 말을 듣고 잘 알지도 못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KAC가 설치해주는 가공시설인 커피 워싱스테이션(washing station)을 사용해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KAC의 거래 계약서는 르완다 농부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어로 작성되었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가공시설 등의 지원은 순수한 '지원'이 아닌 '상환이 걸린 담보'이고 '대출'이었다. 그리고 그 대출금은 르완다 현지화가 아닌 미국 달러(US Dollar)로 산정되어있어 해가 거듭될수록 떨어지는 르완다 프랑(RWF) 가치로 인해 실제 금액이 상대적으로 눈더미처럼 불어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매년 KAC는 정확한 상환금과 수익을 공개하지 않은 채 정산대금을 협동조합에 통보하였고, 농부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채는 계속 늘어갔다. 결국 협동조합은 해가 거듭할수록 수익보다 부채가 늘어가는 불합리한 계약을 협동조합이 스스로 파기하고 다른 거래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렇게 비즈니스 역량이 부족한 소농들이 모인 작은 협동조합이었지만, 그럼에도 기시타 커피협동조합은 커피 품질이 뛰어난 편이어서 다양한 좋은 고객에게 소개하고 도와주고 싶은 곳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과 함께 2018년은 아름다운커피가 기시타 커피협동조합과 처음으로 함께 만나 일하기 시작한 해였다. 나는 이 협동조합의 커피를 한국 등 여러 곳곳에 샘플을 보내기도 하며 여러 전문가와 함께 테스트하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기시타커피 협동조합은 아름다운커피가 르완다에서 함께 일하는 비슷한 3개 파트너 협동조합들보다 비즈니스 역량이 부족하고 가공시설 관리도 취약한 편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커피 바이어에게 항상 가장 높은 품질 점수를 받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부족한 비즈니스 역량은 2019년 르완다에도 닥친 커피 가격 위기상황에서 더욱 노출되고 말았고, 수확 시즌 시작과 함께 KAC 이후 주요 거래처인 RTC(Rwanda Trading Company)로부터 결국은 거래 불가 통보를 받고 말았다.
2018년 브라질 커피의 생산량 폭등은 앞서 언급한 세계 커피가격의 폭락을 가져왔다. 10년 만에 세계 커피가격이 최저로 내려갔고 여러 커피 생산국들이 다양한 피해를 입었지만, 르완다도 그 피해가 큰 나라 중 하나였다. 르완다 국내에만 해도 2019년 당시 미처 다 해외로 팔지 못한 2018년도 커피가 30%가 적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고스란히 RTC, DORMAN과 같은 내수기업들에게도 큰 피해로 돌아왔다. 아프리카 대륙 커피의 주요 공급 기업인 올람(Olam)도 르완다에서는 2019년부터는 직접 커피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내수시장 투자 사업을 접고 글로벌 시장 커피 거래 연결 업무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2019년 초 가격위기가 현실화되자 현지 내수 기업들은 2018년의 적자 손실을 메우고자 긴급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고, 그 첫 시작은 자신들에게 커피 파치먼트를 공급하는 공급자들을 대폭 줄이는 것이었다. RTC의 경우는 르완다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르완다 전역의 거래처 협동조합 중 21개 협동조합과 거래를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커피 수확 시즌 시작 직전 공급처 협동조합들에 이를 통보하였다. 그리고 이 거래 중단 블랙리스트에 우리 파트너 4곳 중 2곳 협동조합이 포함되었다. 두 번째 조치는 내수기업이 공급자들에게 커피 파치먼트를 가공하도록 선지급하던 선급금(working capital)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두 조치 모두 농산물인 커피를 재배하고 판매, 가공해야 하는 소농과 협동조합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종잣돈(seed money) 없는 소규모 협동조합들은 파치먼트 가공을 위해 커피 체리를 농부들에게서 구매할 대금 역할을 하는 선급금을 어디에서도 조달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은 곧 커피 농부들이 커피를 판매할 거래처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작은 협동조합에게는 담보 없이는 은행에서도 대출을 해주지 않는 비즈니스 환경으로 인해 결국 자금을 구할 수 없게된 이들은 2019년 커피 비즈니스를 접어야 하는, 농부와 협동조합 모두가 사지로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2018년 브라질에서 출발한 커피가격 폭락은 2019년 아프리카 르완다 소농에게까지 또 하나의 '빈곤(Poverty)'의 이름으로 찾아와 있었다.
기시타 커피협동조합과 함께 아름다운커피가 르완다에서 함께 일하는 파트너 중 카로라(KARORA) 커피협동조합이 있다. 카로라 커피협동조합도 기시타 조합처럼 2011년경 내수 커피회사들과 현지 NGO의 설득으로 처음 109명이 모여 설립한 커피 협동조합이다. 이들도 내수 회사가 협동조합을 설립하면 커피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가공시설과 기자재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같은 방법으로 ‘지원(support)’으로 농부들에게 약조한 것들을 ‘대출(debt)’로 USD로 산정한 영문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커피 파치먼트 가격과 대출금을 제한 정산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고, 대출금에 수수료까지 얹은 상환 이율은 25%에 달했다. 카로라 커피협동조합도 해가 지날수록 수익보다 빚이 늘어가는 것을 보며 내수기업에 투명한 내역 공개를 요구했고, 이후 미화 달러 기준으로 대출로 산정된 영문 계약서를 이해하고 분노에 휩싸여 계약 파기를 요청했다. 기시타 커피협동조합보다 카로라 커피협동조합에 대한 내수기업의 대응은 더 단호했다. 협동조합의 계약파기 요구를 일방적인 계약해지로 간주한 내수기업은 협동조합을 찾아와서 대출로 산정하고 있던 지원했던 워싱스테이션 가공시설과 기자재, 아프리칸 베드들을 모두 일방적으로 철수해서 되가져갔다. 카로라 커피협동조합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 해지'의 대가였다.
조합은 가공시설이 없어 커피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없게 되었고 109명이었던 조합원들은 이로인해 거의 다 협동조합을 떠났다. 그러나 협동조합을 설립했던 의장 엘리에제(Eliezer)와 몇 명의 남은 협동조합 핵심 멤버들은 그래도 여전히 커피 농부들이었다. 절망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남은 16명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커피 판로를 다시 찾고 그간의 협동조합의 경험을 단지 실패로만 만들지 않기를 원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출자금을 모아 협동조합을 다시 설립했다. 그렇게 카로라 커피협동조합은 16명이 다시 모여 설립했고, 처음에 3만 프랑(한화 약 3만 원)이던 회원비는 5만 프랑, 10만 프랑씩 계속 조합원들에게 무이자 상환을 전제로 추가적인 펀딩을 통해 마련해서 목돈을 모아 마침내 작은 커피 가공기계를 갖추었다. 그래도 가공한 커피를 건조할 수 있는 아프리칸 베드가 또 필요했다. 이에 엘리에제 의장과 그나마 여유가 있던 다른 부조합장이 100만 프랑씩을 각각 더 투자했고, 그제야 협동조합은 최소한의 가공기계와 건조시설을 겨우 갖출 수 있었다. 아름다운커피는 2016년 처음으로 르완다 현지조사에서 이제 막 다시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할 준비가 된 카로라 커피협동조합을 만났다. 워싱스테이션을 빼앗기고 조합원이 다 떠나가버린 후 16명이 다시 시작한 작은 협동조합인 상태에서 말이다. 카로라 커피협동조합은 기존 내수 거래처를 KAC에서 다른 회사인 RTC로 바꾸었고, 이후로는 RTC와의 거래 관계를 이전보다 더 똑똑하고 철저하게 유지했다. 기시타 커피협동조합과 카로라 커피협동조합은 두 곳 다 현재 RTC의 거래처로 2019년 거래중단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카로라 커피협동조합은 이런 RTC의 대응에도 RTC를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재협상에 재협상을 거쳐 2019년 블랙리스트에서 제외되어 계속 커피 수매와 판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커피 가격 위기에서 살아남은 커피 협동조합이 된 것이다.
이렇게 카로라 커피협동조합과 같이 르완다 농부들은 살아남더라도 여전히 고통은 감수해야 했다. 30%가 쌓인 국가 수출 재고는 결국 르완다 커피보드(Coffee Board)가 기준으로 정하는 2019년도 커피 체리 가격을 다시 30% 삭감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농부가 협동조합과 가공업자에 판매해서 받는 커피 열매(cherry)의 단가를 줄이지 않고서는 르완다 내수 기업들이 농부들로부터 커피 파치먼트를 구매를 할 수 없다고 선언한 데에 따른 정부의 조치였다. 르완다 정부, 내수기업, 협동조합, 농부 모두 뼈를 깎는 마음으로 가격을 줄이고 줄였다. 그러나 2019년 국제 시장에서 르완다 커피가 거래된 실제 가격을 보면 이 고통분담의 법칙을 모두가 따르지는 않았다. 고통 분담의 가장 큰 주체는 결국 가장 끝단의 생산자들이었던 것이다.
2019년도와 달리 2020년에는 세계적으로 커피 가격이 어느 정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 마저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촉발될 경제 위기가 실제 커피 가격에 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커피 가격은 생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0년도 현재의 위기는 대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자영업자가 많이 분포한 커피 소비시장에도 이미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소비시장 타격이 적지 않은 이때에 생산자의 만성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을 견뎌내는 한국의 시민의식과 연대가 지구촌의 모범이 되는 것을 보며 위기의 때야 말로 타인의 어려움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가격위기와 커피농부의 어려움은 저 멀리 커피 생산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가 한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까지 전파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혼란 중에 길을 찾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연대라는 것을 직접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커피 생산지에서 시작되는 커피 위기는 단기적인 오늘의 카페 비즈니스 매출을 넘어 장기적인 커피 비즈니스 업계의 생존의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아프리카에 폭우를 뿌리고 가뭄을 일으켜 커피 생육에 혼란을 일으키는 기후변화는, 한국의 더 이상 춥지 않은 겨울과 폭염의 여름을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은 대서양 거북이를 옭아매고 다시 우리가 마시는 물에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돌아온다. 코로나로 인해 공장이 생산을 멈추면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베니스에 관광객이 끊어지면 운하 바닷물이 더 깨끗해진다.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지구촌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체감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장기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이다. 2019년 3월, 커피 생산자들은 글로벌 커피 시장에 분명히 직접적으로 선언했다. 더 이상 행동하지 않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고.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월간 커피앤티(Coffee & Tea) 2020년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