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피에르 불레즈의 조합은 그 어떤 레퍼토리도 소화 가능한 황금 콤비이지만 라벨을 비롯한 후기 낭만주의와 현대음악에 있어서 감히 이들을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의 최적의 만남이다. 우선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모리스 라벨 최고의 걸작이고 고금의 빛나는 명반들이 즐비하지만 유명한 아르헤리치-아바도 조합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이들 연주에 손을 들어줄 것 같다. 혹자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지독한 차가움에 치를 떨 수도 있겠지만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이토록 관능적이고 기능적으로 정교한 연주로 형상화한 이들의 해석엔 찬탄을 금하기 어렵다. 자유롭고 나른한 서정미로 가득한 그들의 음색에 어느 순간, 깊게 심취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대단히 신비로운 경험이다. 이들은 뻔뻔한 정공법을 구사하지만 소금과 같은 몽환과 후추 같은 에로스를 양념처럼 끼얹는다. 냉온탕을 급히 오가는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기교와 강렬하고 맛깔스런 소스가 주는 감미로운 조화, 그리고 고급 셰프의 세련된 손맛이 어우러져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승화된다.
피에르 불레즈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연주의 <라벨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이 음반의 상큼한 백미다. 불레즈의 지휘는 비주얼은 그닥이지만 그의 손끝은 미국 오케스트라를 파리의 세느 강변이나 몽마르뜨 언덕 위로 옮겨놓는 마법을 부린다. 물론 지나친 인상주의로 몰고 가지는 않는다. 그는 적절한 선을 지켜 작품의 기능성을 최대로 살린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최상의 카타르시스를 구현한다. 그것이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불레즈의 놀라운 저력이다.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지메르만의 화려하고 청아한 감각적인 타건과 불레즈의 단단하고 확고한 서포트가 만나 기쁨과 쾌락의 하모니를 이룬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음색과 관능적인 타건은 청중을 몽환적인 판타지의 세계로 이끈다. 모든 요소가 깔끔해 도입부터 코다까지 지독하게 완벽하지만 그래서 이들의 음원은 모두의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왼손으로 어떻게 이러한 음악과 연주가 가능할 수 있는지 도무지 믿겨지지 않더라도 바로 그런 비인간적인 부분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탓에 우리는 이 연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