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루살카 판타지>는 지휘자 만프레트 호네크가 직접 편곡에 참여해 더 의미가 크다. 오페라 "루살카"의 아리아와 여러 주제들이 담겨있는 작품으로 서울시향은 시작부터 유려한 앙상블로 다소 낯선 느낌의 이 작품을 이색적이고 아름답게 연주하고 있다. 만프레트 호네크는 2019년 9월 5, 6일,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서울시향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말러 교향곡 1번>을 지휘해 격찬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두 번의 공연 모두를 직관했던 나로선 대단히 인상적이고 놀라웠던 연주회로 잊히지 않는 감동을 선사했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늘의 공연도 그날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대단히 만족스러운 연주를 펼치고 있다. 후반부 유명한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의 고혹적인 선율이 부악장 웨인린의 바이올린 솔로로 연주돼 짙은 낭만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의 최대 백미라 할 아름다운 선율이 깊은 인상을 심어주며 초반의 낯설었던 마음을 완벽하게 잠재웠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헨릭 구레츠키ㅣ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악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ㅣ"내일(Morgen)"
소프라노 임선혜가 협연하는 구레츠키는 전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조합이다. 구레츠키를 국내 성악가가 연주한 예는 2017년 4월 27일, 지휘자 구자범과 코리안심포니 (현재 국립심포니) 연주회에서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3악장을 노래했던 순간이 아마도 유일할 것이다. 임선혜 특유의 밝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과연 구레츠키의 작품에 어울리는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분명히 라디오로 전해지는 사운드는 한계가 있었고 오케스트라와 온전히 융합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웠다. 조용히 사그라지는 마지막 순간의 여운은 훌륭했다.
곧바로 이어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유명한 가곡인 "내일(Morgen)"은 서주부의 바이올린 독주와 하프 현의 아련한 앙상블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임선혜의 목소리는 사실 고음악에 가장 어울리지만 후기 낭만주의 가곡에서 새로운 느낌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훌륭한 가곡인데 그만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수많은 성악 버전뿐만 아니라, 현악 오케스트라 편곡도 지난 교향악 축제에서 최수열이 지휘한 부산시향이 앙코르로 들려주기도 했다.
모차르트ㅣ엑슐타테 유빌라테 (환호하라 기뻐하라)
오늘 연주회에서 임선혜에게 가장 어울리는 레퍼토리는 누가 뭐래도 "엑슐타테 유빌라테"일 것이다. 예전에 비해 고음부에서 비브라토가 유달리 잦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로 작품이 요구하는 목소리와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다소 힘에 부치는지 기교적인 부분에서 호흡이 고르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레치타티보는 역시 그녀답게 훌륭하다. 이어지는 후반 선율에서 서울시향의 앙상블이 혼선을 빚었던 아찔함도 있었지만 '어울림'이란 단어가 어울릴 오늘의 순간은 지금 이 순간, 모차르트와 임선혜의 만남일 것이다. '알렐루야'는 가장 테크니컬 한 부분인데 소리를 구사하는 힘과 기능성은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차이콥스키ㅣ교향곡 6번 "비창"
호네크의 해석은 도입부터 독특하다. 스피디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는 그만의 해석의 방향을 확고히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악 파트가 주도하는 너무도 유명한 주제부 선율이 등장하면서 텐션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늘어지거나 멈칫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열찬 전진으로 두 번째 주제부가 등장하면서 격정적인 러시안 음악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충격적인 강력한 총주가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정공법의 전형이다. 나의 소견으론 "비창교향곡"은 호네크와 같은 이러한 적극적인 접근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기에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원스러운 이들의 연주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가장 슬픈 비극적 심상은 '4악장 피날레'가 아닌 '1악장의 총주부'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칠흑 같이 어둡고 무거운 선율 속에서 피어나는 지극히도 아름다운 주제 선율의 조화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아닐 수 없다. 코다에서 금관과 목관, 현악의 피치카토가 조화를 이루는 이 오묘한 섬뜩함은 진한 카타르시스를 이룬다.
2악장 역시 대단히 빠른 템포로 쾌속의 흐름을 보인다. 과연 3악장에서 얼마나 파괴적인 열연을 펼쳐낼 것인지 벌써부터 가슴을 떨리게 한다. 호네크와 서울시향의 첫 연주회에서 선보였던 <말러 교향곡 1번>에서의 전율이 또렷이 상기되는 순간이다. 서울시향이 그의 지휘에 잘 녹아들었다는 건 서로의 호흡 주파수가 일치한다는 뜻일 것이다.
3악장은 시작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역시 독특한 프레이징과 템포 운용, 그리고 꺼지지 않는 터보 엔진은 걱정이 아니라 점점 강하게 솟아오르는 기대감의 상승을 가져온다. 고의적으로 박수를 이끌어내는 작품의 구조는 말러가 그의 교향곡 9번을 작곡하면서 작품의 기본 틀로 사용한 교향곡인 만큼 (말러 교향곡 9번이 그러하듯이) 폭발적인 총주부와 저돌적인 스피드가 압도적인 흥분을 일으키며 폭발적인 박수를 유발한다. 그야말로 3악장은 러시안 음악의 진수이다. 코다로 향해 나아가는 길목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진격을 보여준다. 역시나 객석에선 일부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처럼.
4악장이 곧바로 이어진다. <말러 교향곡 9번>의 절절한 피날레처럼, 차이콥스키의 현악은 진한 슬픔의 눈물을 아름답고 격정적으로 표현한다.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곡의 가장 절묘한 묘사라 할 수 있는데 한편으론 말러의 아다지오가 지닌 '통렬함'의 모태는 차이콥스키 "비창교향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향의 거대한 현악군은 처절하게 울부짖고 고요하게 종결된다. 오랜 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객석에선 브라보와 함께 갈채가 쏟아진다. 역시 만프레트 호네크다운, 거침없고 단단한 연주였다. 그만의 독보적 감성과 공간감 속에서 음향을 한 겹 한 겹 쌓아가는 예술성의 조화가 대단히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분명한 사실 하나가 더욱 확실하게 각인되는 순간이다. 호네크는 자신의 음악을 확고하게 표출하면서 오케스트라가 그에게 동의하도록 자연스레 호흡하는 강력한 동질감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단히 유능한 트레이너이면서 걸출한 음악성을 겸비한 진정한 천재 예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