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샤이의 말러는 특징적인 일관된 흐름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나 그의 접근방식은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섬세함과 투명함이 공존하기에 말러리안과 애호가들 모두에게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일 테다.
<말러 교향곡 1번>은 이 작품이 추구하는 기본과 원칙을 충실하게 구현한 연주이다. 대부분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1989년 실황음반을 떠올리는 교향곡이기에 상대적으로 샤이의 음원은 크게 주목을 끌지는 않았으나 그의 말러를 아는 이라면 이 연주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하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감히 이 음원을 최상위의 기록 중 하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리카르도 샤이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말러리안 지휘자이다.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에서 '샤이 말러'의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치밀하게 투영되는 모든 성부의 적나라함은 오히려 "부활 교향곡" 같은 대규모 작품에서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폭발적인 거대한 음향으로 묵살되는 디테일은 연주가 끝나면 공허로 남는다. 그래서 이 모든 요소를 오롯이 살려내는 연주는 강렬한 인상으로 청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샤이는 극단적이거나 전투적인 말러와는 다르게 중용과 이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내면이 음악예술을 접할 때 느끼는 감성의 카타르시스를 교묘히 뒤섞는 절충적인 해석을 구사한다. 그의 '중도적 노선'이 분명한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최선의 선택은 될 수 있다. 극단적인 조화로움 속에서 인간적 본능과 쾌락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의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자연스러운 앙상블과 폭발적인 충격을 동시에 선사하는 샤이의 해석은 말러를 가장 완벽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거장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준다. 1악장 도입부 시작부터 피날레에 이르는 순간까지 올곧은 해석은 분명 모두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샤이 말러가 나아가는 방향은 모두의 공감을 불러오는 확고한 요소임을 그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수족,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의 완전무결한 연주력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역할을 다 한다. 모든 파트의 탄탄한 연주력은 새삼 재론의 여지가 없다. 샤이의 말러 해석을 가장 충실히 구현했던 오케스트라는 단연 그들이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시절 베토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장엄하게 울리는 피날레의 합창은 숭고한 감동을 안긴다. 그가 <말러 교향곡 3번> 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긴 호흡으로 고조되는 종결부의 가슴 벅찬 클라이맥스는 이상적인 확신으로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