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무거운 발걸음처럼 한없이 느린 템포의 '아리아'가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른다. 쓸쓸히 길을 걷는 나그네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음정을 읊조리며 고뇌를 노래한다.
전설의 기록으로 남을 글렌 굴드, <J. S.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흐린 겨울날의 몽상을 떠올리게 하는 차분한 톤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제1 변주'부터 급격한 가속과 강하고 적확한 타건으로 분위기 전환을 꾀한다. 마치 조울증 같은 급반전이다. 이후 굴드의 템포는 다시 감속하지 않은 채 강렬한 힘으로 힘차게 나아간다. 글렌 굴드의 끝없는 허밍도 신이 난 아이처럼 한껏 들떠있다.
정확하게 한음 한음을 찍어내는 집요함과 바흐에 완벽히 동화된 굴드의 목소리가 주는 마력에 감상자는 속수무책 빠져들게 된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듯한 타건에 비해, 굴드의 흐느낌은 오히려 감정과잉의 상태라는 것이 바로 이 음원이 주는 가장 독보적인 요소일 것이다.
건조하고 단정한 타건과 연주자의 격한 감성이 결합되어 이루는 극한 반전과 상극의 화학반응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온다. 굴드의 연주는 예프게니 코롤리오프의 진정한 바로크 감성이나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북구 미니멀리즘 스타일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독자적이고 개인적이며 한 차원 다른 지극히 독보적인 세계이다. 그 누구도 그의 연주를 흉내 낼 수 없는 '역설적인 정석'의 진수라 하겠다.
이 연주는 '바흐이면서 굴드'이다. 이것은 곧 두 존재만의 일체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바흐의 음악 안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굴드의 전설이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환희를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