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온다

by Karajan

오늘 오전, 개원을 앞둔 병원 공사현장에서 예정에 없던 가구를 놓을 공간 사이즈를 급하게 측정하다가 오래도록 애지중지하였던 내 줄자에게 쓰라린 배신을 당했다.


자신의 몫을 다한 후 순간 '스르르륵~~ 촵!!' 하고 감기던 녀석의 날렵한 모서리가 미처 피하지 못한 내 손가락에 날카롭고 예리한 흔적을 남긴 것이다. 새로 깔린 바닥과 브라운 계열로 깔끔하게 도색된 치료실 벽에 빨간 피가 사정없이 튀었다. 손가락을 티슈로 지혈하면서도 나의 시선은 벽에 튄 선명한 핏자국에 고정된다. 아이고, 이를 어쩐단 말인가.


닦아봐도 지워지기는커녕, 얼룩이 더 번지자 좌절감이 몰려온다. 손가락을 누르고 있는 나를 보고 수술실 담당 선생님과 원장님이 깜짝 놀라 상처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를 급히 차에 태워 선생님께서 전에 일하던 병원으로 데려가 이렇게 드레싱을 해주셨다. 그래도 꿰맬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이 그저 다행일 뿐이다.


사고란 것은 늘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고 내게 어차피 올 것이기에 마음은 제법 담담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까지 정신없던 현장 상황을 함께 호흡하다가 집에 돌아오니 이제야 심란함이 몰려온다. 나흘동안 알바도 해야 하고 병원 현장에도 가봐야만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체념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어쩌겠는가. 세상 모든 사건은 새로운 변화의 타협점을 모색하게 만드는 불가항력의 모티브인 것을. 위태롭지만 나의 새로운 시작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닥친 진정한 위기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가장 무거운 현실이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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