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모 벤스케의 서울시향 취임 연주회(2020.2.14~15) 이후 무려 3년 만에 찾은 서울시향 연주회였다.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는 설렘은 시벨리우스로 채워진 오늘이기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기도 했다. 갑작스런 사고 이후에 복귀한 오스모 벤스케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로 초췌해 보였다. 무엇보다 꽤 심각해 보이는 그의 고관절 상태는 그의 삶을 모두 끌어내릴 정도로 큰 타격이었을 것이다. 힘겨운 모습이었지만 포디엄 위에서 시벨리우스를 만난 그의 표정은 진정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는 더욱 힘을 냈을 것이다. 시벨리우스가 그의 정신 세계를 오롯이 지탱해주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J. SibeliusㅣKarelia Suite Op.11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시벨리우스 특유의 음향을 충분히 드러낸다. 흔한 관념적인 핀란드 사운드가 아닌, 진짜 현실적인 핀란드 음색을 보여준다. 비가 내리는 '헬싱키의 도심이나 투르쿠의 아우라 강변을 거니는 듯한 느낌의 음악'이라면 딱 맞는 표현이 될테다. 서울시향은 조금 밋밋할 순 있겠지만 대단히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이음새와 순도 높은 음색의 앙상블로 '카렐리아 지방'의 파이처럼 뭔가 덤덤하고도 깊은 맛을 선보였다. 활기차고 토속적인 민요풍의 선율은 그가 라티 심포니를 이끌던 시절로 되돌아가 고국의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관객들의 마음에도 핀란드를 깊이 각인시키는 듯했다.
J. SibeliusㅣViolin Concerto Op.47
DG의 간판 스타, 리사 바티아쉬빌리의 한국 데뷔 무대를 지켜보는 기대감은 대단했다. 무대에서 그녀가 선보였던 자주빛 드레스의 아름다운 자태는 본능적인 가슴 설렘을 안겼다. 전날 공연에선 1악장이 제법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오히려 오늘은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바티아쉬빌리의 기량은 무척 훌륭했고 벤스케의 서포트도 안정적이었다. 다만 롯데홀의 음향은 바티아쉬빌리의 기량을 오롯이 드러나게 해주지 못했다. 그녀의 명징하고 강인한 활의 움직임은 그만큼 소릿결로 발현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독주자가 초절기교적인 솔로 파트를 비장하게 돌격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리사 바티아쉬빌리의 보잉은 허공을 가르며 차갑고 날카롭게 달려간다. 2악장의 서글픈 애절함에 사무치는 내 마음은 3악장에 이르면서 무섭게 뛰기 시작한다. 핀란드 지휘자 벤스케의 감각적인 맹공격은 바티아쉬빌리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다만 기대치 보다 강렬하고 차갑게 전개되지 못하는 서울시향의 공격력은 아쉬움이 남는다. 코다에서 가학적이지 못한 밀어부침이 바티아쉬빌리의 날카로움을 급격히 상쇄시키는 결과로 남겨져 실연에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완전체를 목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깊게 각인시켰다. 오늘 관객들은 그녀의 뜨거운 연주에 열광했고 아직 보내주기 싫은 듯 수차례 무대로 불러내 깊은 애정을 담아 열광적인 박수 갈채를 보냈다.
<Encore>
Jarkko RihimakiㅣEvening Song
Alexi MachavarianiㅣDoluri
야르코 리히매키가 바이올린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한 핀란드의 민요 "저녁 노래"는 고혹적인 선율과 아름다운 음향적 조합을 이루며 마치 꿈결 같은 환상적 순간을 선사했다. 이어진 그녀의 앙코르는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기교적이고 기괴한 음색을 지닌 곡으로 흐느끼듯 울리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바티아쉬빌리의 놀라운 테크닉을 엿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J. SibeliusㅣSymphony No.6 Op.104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은 시벨리우스의 다른 교향곡 작품들과 궤를 달리하는 지극히 영화음악적인 대중성을 지닌 곡으로 실연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아 오늘 연주는 희소가치도 충분했다. 어쩌면 벤스케의 음악적 스타일에 가장 부합하는 교향곡이라 할 수 있는데 역시 예상대로 산뜻하고 오묘한 이 작품만의 매력을 충실하게 뽑아내는 느낌이었다. 서울시향에게도 생소했을 음악이기에 과연 벤스케의 해석 방향이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쏠리는 순간이었다. 북구의 서늘한 기운이 낭만적 선율 위에 부드럽게 얹어지는 특유의 성향은 두터운 근육질의 연주와는 거리가 먼, 핀란드 시골의 전원 풍경을 연상케 했다. 무게감을 줄이고 시원스러운 현의 질감을 강조해 명쾌하게 작품의 속살을 드러내려는 벤스케의 접근법은 작품을 보다 친근하고 섬세하게 해설해주는 느낌이었다. 카라얀이나 매캘래의 연주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따스한 다가감을 지향해 흐뭇한 마음으로 그들의 연주를 지켜볼 수 있었다. 조용하게 사그러지는 코다의 아련한 여운은 다음 공연을 끝으로 서울시향을 떠나는 오스모 벤스케의 애절한 마음을 엿본 듯한 안타까움을 담아낸 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