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세이지ㅣ말러 교향곡 1번 外

by Karajan

#오늘의선곡


G. MahlerㅣSymphony No.1 & Ruckert Lieder*


Baritone/ Dietrich Fischer-Dieskau*


Seiji Ozawa - Boston Symphony Orchestra

Karl Bohm - Berliner Philharmon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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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1번>의 명연을 논할 때, 오자와 세이지와 보스턴 심포니는 빼놓지 않고 거론된다. 이들의 연주는 격정적이거나 파괴적인 앙상블은 아니지만 안정적이며 아름답고 정제된 연주로 최상의 반열에 드는 음원이다. 게다가 '블루미네'가 원래의 위치에 놓여 있는 흔치 않은 구성을 담고 있으며 무엇보다 오자와 세이지의 유려하고 깔끔한 해석과 보스턴 심포니의 탄탄한 앙상블, 그리고 세련되고 맑은 사운드는 이 연주가 지닌 가장 매력적인 요소이다.


1악장은 놀라운 삼쾌의 전형을 보여준다. 감히 말하건대, 1악장 만큼은 이들의 연주가 고금의 모든 디스코그라피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 조금도 흠 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형태를 지녔다. 이어지는 '블루미네'는 지극히 유려하고 아름다우며 한없이 평화롭다. '블루미네(Blumine)' 역시 모든 음원들 중 가장 이상적이다. '블루미네' 이후에 듣는 2악장은 사뭇 어색하다. 그러나 곧바로 평정을 되찾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본으로 돌아오는 안정감임과 동시에 여전히 완벽한 연주에 자연스레 동화되는 것이다. 고음 현의 맹활약에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은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저 아름답게만 다듬어진 소릿결이 아니라, 모든 파트를 낱낱이 살려낸 섬세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문제는 3악장이다. 가장 좋아하는 악장이기에 조금만 취향에 어긋나도 거슬리는 부분인데 일단 초반부 템포가 과히 느리다. 물론 음향적으론 훌륭하지만 3악장 특유의 감성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강렬한 애수 속에서도 리듬감이 번뜩여야 감정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불만도 잠시, '템포 루바토'가 옳은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오자와는 무작정 스피드를 늘어뜨릴 지휘자가 아니다. 이내 되찾은 속도감은 놀랍게도 내 감성 코드와 일치를 이루며 깊은 내면의 절정을 만끽하게 한다. 4악장 피날레는 도입부부터 화끈하고 강렬하다. 적절한 여유도 묻어나며 매끄러운 비단결 사운드도 일품이다. 시원하게 뻗는 금관의 무자비한 폭격은 강렬하면서도 고급스럽다. 코다로 향하는 격렬한 총주부는 감성과 이성이 적확하게 밸런싱을 이룬다. 어쩌면 비 인간적인 느낌마저 들지만 그들의 오묘한 줄타기에 정신없이 빠져들면 그런 계산적 시각은 큰 의미가 없다. <말러 교향곡 1번>의 이상적인 연주로서 모두에게 이들의 음반을 주저 없이 추천한다.


칼 뵘은 생전에 말러를 거의 녹음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뤼케르트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콘트랄토 크리스타 루드비히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남겼다. 칼 뵘의 "말러 심포니"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은 카라얀이 끝끝내 남기지 못했던 말러 교향곡들(1, 2, 3, 7, 8번)만큼이나 안타깝다.


칼 뵘의 말러는 따스하고 안정적이며 풍성하다. 그 위에 얹어진 디스카우의 그윽한 음성은 독일 가곡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유명한 네 번째 곡, '나는 세상에서 잊어지고'는 지나친 슬픔을 억제하고 속으로 삭이는 한과 고통으로 승화돼 더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는 분명 뵘과 디스카우의 조합이기에 가능한 해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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