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보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9번>은 그들만의 조합으로도 충분히 예상되는 말러의 전형이다. 이는 장단점이 극명한 결합이기도 해서 서로의 시너지도 크지만 그게 말러라면 피할 수 없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기능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듯 이들은 무척 대담한 테크니션의 조합이지만 작품에 내재된 의미와 심오한 감성에는 얼마나 다가가는 해석인지 의문이 든다. 이를테면, '북구의 시벨리우스'를 열대 우림에서 듣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이것은 긍정적이기도, 때론 부정적이기도 하다. 시각적 차이가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1악장의 느리고 두터운 질감, 그리고 후반부의 급가속, 2악장의 재즈풍 바이올린 솔로 위에 능청스럽게 얹어진 브라스 밴드, 3악장의 자유로운 템포와 치밀하게 정곡을 찌르는 총주의 거대한 파괴력, 4악장 피날레의 말라리아(말러리아가 아닌)에 걸린 듯한 오싹한 한기는 이 연주가 지닌 독특한 매력이자 치명적 한계이다. 베네주엘라 지휘자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의 연주는 그들의 지난 내한공연에서 경험한 <말러 교향곡 6번>의 기억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한다. 도저히 제거될 수 없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는 서늘한 긴장감을 냉정히 잘라내고 열정적인 화력으로 저돌적인 행군을 강행한다. 이는 오롯이 그들의 권한이며 그들만의 말러를 형상화한 확고한 자신감은 이 음원만의 부정할 수 없는 강점이다. 비록 만인의 공감을 이끌 순 없어도 반드시 들어봐야 할 연주임은 확실하다. 구스타보 두다멜은 부정할 수 없는 매력적인 말러리안 지휘자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