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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jan May 27. 2024

피에타리 잉키넨-KBS교향악단ㅣ말러 교향곡 3번

 #공연리뷰


피에타리 잉키넨 - KBS교향악단ㅣ말러 교향곡 3번

 

5.26(일) / 17: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Mezzo-soprano/

오카 폰 데어 다메라우 (Okka von Der Damerau)

 

고양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고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 피에타리 잉키넨 (Pietari Inkinen)

연주/ KBS교향악단 (KBS Symphony Orchestra)

객원악장/ 마르쿠스 볼프 (Markus Wolf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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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 #MarkusWolf

#피에타리잉키넨 #PietariInkinen #Mahler #KBSSymphonyOrchestra #KBSSO

@kbssymphonyorchestra

 

G. MahlerㅣSymphony No.3

 

1. Kräftig. Entschieden

: 목신이 깨어나고 여름이 행진해 온다

 

2. Tempo di Menuetto, Sehr mäßig

: 초원의 꽃들이 내게 말하는 것  

 

3. Comodo. Scherzando. Ohne Hast

: 숲 속의 동물들이 내게 말하는 것

 

4. Sehr langsam. Misterioso

: 인류가 내게 말하는 것  

 

5. Lusig im Tempo und keck im Ausdruck

: 천사들이 내게 말하는 것

 

6. Langsam. Ruhevoll. Empfunden

: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

 

나는 <말러 교향곡 3번> 실연을 이번 공연까지 총 12번 경험했다. 2005년 7월, 함신익-대전시향(2회) 연주회를 시작으로, 함신익-KBS교향악단, 정치용-KNUA심포니, 정명훈-서울시립교향악단(2회), 구자범-경기필하모닉, 임헌정-SNU심포니, 요엘 레비-KBS교향악단, 박영민-부천필하모닉, 진솔-말러리안 오케스트라, 그리고 오늘, 피에타리 잉키넨-KBS교향악단에 이르기까지 20년이란 세월을 지나오며 결코 만나기 쉽지 않은, 음악 역사상 가장 장대한 규모의 교향곡과 만났던 모든 순간들은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강한 설렘과 불안감을 뒤로하고 장중한 호른 서주가 첫 악장의 시작을 알린다. 도입부는 흠잡을 곳 없는 깔끔한 소릿결을 들려줬으나 사실 연주 내내 작년 7월, 진솔이 지휘하는 말러리안 오케스트라의 장쾌한 앙상블이 계속 내 마음속을 맴돌았다. 오후부터 갑자기 내린 비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눅눅하고 텁텁한 홀톤이 말러가 그린 대자연에 잿빛 그림자를 드리우는 듯했다. 이후의 연주는 무난한 흐름을 보이면서도 무언가 혼란스러웠고 어수선했다. 딱히 문제적 요소는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오롯이 만족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오늘 내가 이 공간에 존재하는 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점이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기능적인 측면에선 온전한 수준이었기에 성공적인 연주로 자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만석의 관객과 도무지 어떤 연주가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저 무대가 늘 불안하고 숨 막히는 이곳, 그래서 공연장은 온갖 불편을 감수하고 인내해야 하는 고행과 마음수련의 공간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악재들을 당면(연)한 전제로 하고 무대를 바라보는 일이 이젠 고통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고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나의 기준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앞서, 지금 처해진 상황,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안이다.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는 스스로 지옥으로 향하게 될 테니 말이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악장인 마르쿠스 볼프의 활약은 양날의 검이었다. 오늘의 객원악장으로서 지휘자 잉키넨이 추구하는 해석 방향이나 KBS교향악단 고유의 사운드에 거의 동화되지 않고 독단적이면서 겉도는 경향이 강했다. 솔로 파트는 기술적으로 훌륭했으나 전반적으로 이질감을 안겨줬고 전체 앙상블을 유연하게 이끌어가는 아우라는 부족해 보였다.

 

메조소프라노 오카 폰 데어 다메라우는 4악장 도입부 첫 구절인 'O Mensch! Gib Acht! (오 인간이여! 주의하라!)' 시작부터 음정이 불안했다. 물론 다메라우 고유의 해석일 수 있기에 처음엔 다소 의아한 마음만 가졌으나 중반부 다시 한번 'O Mensch!'를 외칠 때 똑같이 음정이 흔들려 나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반면 그녀의 묵직함으로부터 진중하게 뿜어져 나오는 깊고 중후한 음성은 말러 음악에 온전히 스며드는 일체감을 보여줬다. 보통 성악진이 1악장 종료 후에 입장했던 이전의 관례와 달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입장해 전 연주를 공유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5악장, "천사들이 내게 말하는 것"은 어린이 합창과 여성 합창이 다메라우의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인해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소릿결은 아름다웠고 조화로웠다. 무엇보다 다메라우의 등장 이후 어수선했던 전반부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안정되었다는 점은 그녀의 강렬한 존재감과 더불어 특기할 만했다.  

 

모두가 인정하듯 오늘 가장 빛났던 부분은 트롬본 객원수석의 눈부신 활약이다. 그도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테크니컬 하며 안정되고 강인한 트롬본 독주를 실연으로 경험하게 된 건 오늘 객석을 가득 메운 모든 청중들에겐 뜨겁고 과분한 호사였음에 틀림없다. 잉키넨의 해석은 모험보다 안정을 택한 듯했다. 모든 금관 파트에 화력을 집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고 특히 현을 유려하게 다듬지 못한 점은 대단히 아쉬웠다. 금관 파트는 객원수석의 도움을 크게 받은 것과 달리 현 파트는 객원악장과의 조합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악장 종료 후 6악장 피날레,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이 시작된 이후에도 독창자와 합창단은 여전히 기립한 상태로 유지됐는데 도입부가 진행된 후 서서히 착석하는 연출도 작품의 흐름을 유지하는 의미에서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시각적으로는 부담스러웠다) 코다에서 팀파니의 최종 타격은 두 대가 동시에 때리지 않고 수석 혼자 이중 타격으로 마무리됐는데 실연에서 두 주자의 타격이 정확히 맞지 않은 경우를 종종 경험했기 때문에 오늘 이러한 시도는 공감하며 지지한다. 다만 타격의 강도는 두 주자의 동시 타격이 가져오는 파괴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어서 반드시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오늘 연주는 달리 흠잡을 요소는 없지만 지난 3년 간 꾸준히 성장해 온 피에타리 잉키넨과 KBS교향악단의 행보에 비추어 볼 때 이보다 더 나은 연주가 충분히 가능했으리라는 기대치가 있었던 탓에 결과적으로는 아쉬움으로 종결된 결과물이었다. 공허나 실망이라기보다는 약간의 한숨이 섞인 아쉬움이었다고 해야겠다. 잉키넨의 능동적이고 전투적인 지휘에 비해 중요한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이 또한 지휘자의 몫이며 책임이지만 다리 부상으로 앉아서 지휘하는 뒷모습 속에서 본인 스스로도 한계를 느끼지 않았나 생각된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올해 KBS교향악단을 떠나는 피에타리 잉키넨, 아마도 그 세월은 그들 서로에게 미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노출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 본연의 색채를 지니는 일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 이만큼 상생할 수 있었다는 건 모두가 직접 목격했고 인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들의 음악적 교류가 먼 미래에도 여전히 지속될 수 있기를 강렬히 소망한다. 이는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바라는 부분일 것이다.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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