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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jan Jun 18. 202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ㅣ말러 교향곡 9번

#오늘의선곡


G. MahlerㅣSymphony No.9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armoniker


1982 Berlin Live Recording


#HerbertvonKarajan #Mahler

#BerlinerPhilharmoniker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9번> 1982년 실황 음반은 카라얀의 레코딩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있다. 이는 동곡 1979~1980년 스튜디오 음원도 마찬가지인데 후자는 3악장에서 클라리넷 연주자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실수가 수정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 음원은 전반적인 완성도에 비해 1악장이 너무 어수선하고 상대적으로 앙상블의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라이브인 탓에 일어날 수 있는 불가항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카라얀 특유의 완벽주의 기질에 이를 그냥 넘어갔다는 것도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다.


물론 여러 많은 말러리안들이 이 음원, 1악장의 완성도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건 사실이나 기본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도입부에서 저음 현의 불분명한 보잉과 초반부에 주로 목격되는 불확실성, 불완전한 앙상블은 중반 이후 급격히 안정감을 되찾는다. 카라얀, 베를린필의 30여 년 밀월관계에서 1980년대 초반은 여전히 굳건했던 시절이기에 이들의 연주는 결코 실망감을 안기지 않는다. 오히려 후반에 접어들면 폭발적 템포와 탄탄하고 격정적인 총주로 승부수를 띄운다. 시작부터 강한 자신감을 보였더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거장 카라얀 그 자신도 항상 완벽할 순 없는 것이다. 그도 한 인간이기에.


2악장 이후부터 카라얀의 진검승부가 시작된다. 한층 안정된 앙상블과 완벽하게 통제된 템포, 그리고 세련미까지 더해지며 진정한 이 음원의 가치가 드러난다. 특히 3악장에 접어들면서 이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무아지경의 흐름을 선보인다. 그 누구도 <말러 교향곡 9번>을 이성적으로 지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감성과 이성의 경계는 3악장에서 분명한 변화가 온다. 그리고 마지막 4악장 '아다지오'에서 사후의 세계가 펼쳐지며 현실에서 벗어나 오롯이 감성으로 치환된다. 아마도 카라얀은 피날레에서 현악군의 거대한 파도 위에서 진정한 엑스터시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만의 현을 다루는 방식은 매끈한 세련됨이 아니라 처절한 '한(恨)의 울림'으로 귀결된다. 여러 동곡 음원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기도 하지만 '카라얀의 통곡'은 각별하다. 격렬한 슬픔이 잦아들고 조용하게 흐르는 눈물의 여운이 코다를 향해 흐르면 <교향곡 10번>을 예견하듯 고요한 목관의 울림에 가슴이 요동친다. 다시 분노한 현의 기세가 칼날처럼 폐부를 가르고 장대한 금관군의 폭발이 심장을 두드린다. 카라얀은 작정하듯 필사적인 지휘로 악단을 독려한다. 마치 다시는 이 곡과 마주하지 않을 것처럼 '극단적' 공세를 퍼붓는다. 그들과 같은 시공간에서 숨 죽이며 지켜봤을 관객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서서히 사그라드는 침묵의 현이 완전한 어둠에 휩싸이며 이날의 기적 같은 순간은 종결을 이룬다. 한 편의 장대하고 극적인 대서사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카라얀은 말러 전곡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그린 말러의 세계는 여러 말러리안 지휘자들과 궤를 달리 한다. 교향곡 9번 역시 그가 녹음한 말러 중 가장 독보적인 결과물이며 유일하게 두 번 음원을 남긴 작품이기에 그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가 모든 말러 교향곡을 남겼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은 영원한 고통으로 남겠지만 그의 손길로 빚어낸 말러가 이토록 크나큰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기에 긴 한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연주 이후 80년대 중반부터 카라얀과 베를린필의 관계가 심각하게 틀어졌다는 사실은,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삶은 거대한 파도처럼, 폭풍처럼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르게 변화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결국 모든 삶의 관계는 허무한 죽음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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