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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jan Jul 01. 2024

조성진ㅣ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外

#오늘의선곡


F. Schubertㅣ"Wanderer" Fantasy D.760

Alban BergㅣPiano Sonata Op.1

F. LisztㅣPiano Sonata S.178


Piano/ Seong-Jin Cho


#SeongJinCho #Schubert #Berg #Liszt


조성진 "The Wanderer"의 붉은 재킷은 마치 공포영화처럼 어둡고 침울하며 사색적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수록된 곡에서 전해지는 그만의 능수능란한 터치는 티 없이 해맑고 섬세하다. 쇼팽과 달리 무게감 있는 깊은 악상을 지닌 이 음원은 조성진 특유의 명징한 타건과 강한 에너지로 폭발적 시너지를 이룬다. 이전 대가들의 해석과 사뭇 다른 시선이지만 그만의 장점들이 깔끔한 해석과 명쾌한 타건으로 승화되어 모두의 귀를 즐겁게 한다. 굳이 문제를 삼는다면 그의 연주에서 풍겨오는 쇼팽적인 감성은 여전히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기는 하나, 조금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완벽한 미스터리이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은 쇼팽의 그 어떤 곡과도 완벽히 궤를 달리하는 음악이고 슈베르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도 결이 다른 탓에 그의 연주 안에서 정통성을 느끼긴 쉽지 않다. 다만 고막을 울리는 상큼한 강렬함은 거부할 수 없는 고품격의 매력을 지닌다. 이는 더 이상 조성진을 제외하고 현대음악계를 논할 수 없다는 걸 반증한다.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오롯이 기능적 접근을 보여주는 연주로 이성적 관점에서 슈베르트를 바라보는 그만의 고유한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22년 6월,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과 비교하면 그 둘은 완벽한 테크닉과 단단한 음악성을 지닌 동시에 서로가 완연히 다른 음악적 가치관을 지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으로 피아노의 시인, 조성진이 '드라마틱 아티큘레이션'을 지닌 명징하고 고혹적 타건을 가진 반면, 임윤찬은 거친 맹수 같은, 아직 '날것 그대로'의 상태라는 점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한다.


<알반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는 조성진의 새로운 발견이면서 동시에 "알반 베르크 작품 번호 1번"에 대한 격한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에 각별한 조성진에게 프랑스 인상주의 감성이 투영된 알반 베르크의 단악장 소나타는 분명 그만의 영감을 깊고 황홀하게 표출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 세계를 활짝 열어준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는 작품의 구조적인 스케일과 기술적 측면에서 봐도 거대한 난곡이다. 조성진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친 파도를 유유히 헤쳐나가듯 여유롭고 확고한 타건과 낭만 감성이 겸비된 극히 이성적인 폭발력으로 작품 전체의 흐름을 깔끔하고 시원스레 펼쳐나간다. 조성진의 연주는 세상의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시기와 질투를 느낄 만큼 명징하고 섬세하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환상적인 경험이겠지만 누군가는 잔인한 좌절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작곡가의 작품 사이에서 그의 연주는 분명한 특징이 존재한다. 작품이 지닌 명확한 경계 안에서도 조성진의 감성은 일관된 흐름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가 앞으로 선보일 작품들은 무엇일까? 늘 그렇듯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올 그의 고독한 홀로서기는 젊은 거장, 조성진을 애정하는 많은 애호가들에게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피아노 위의 방랑자인 그가 새롭게 들려줄 미래의 판타지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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