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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jan Jul 11. 2024

[공연리뷰] 스티븐 허프, 김은선-서울시향ㅣ라흐마니노프

#실황중계리뷰


스티븐 허프 & 김은선 - 서울시향ㅣ라흐마니노프 3


7.11(목) / 20:00

롯데 콘서트홀


피아노/ 스티븐 허프

지휘/ 김은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연주/ 서울시립교향악단


#스티븐허프 #김은선 #라흐마니노프 #SPO

#서울시립교향악단 #SeoulPhilharmonicOrchestra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도입부터 스티븐 허프의 피아노 결이 온전히 마음을 휘감는다. 김은선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서포트도 서로 대단히 밀착돼 있다. 무게중심도 제법 잘 잡혀 있고 근래 보기 드물게 협연과 이루는 안정적인 호흡도 인상적이다. 스티븐 허프는 이 난해한 작품에서 여유로운 속주를 펼친다. 중반부의 우레 같은 총주는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초접전 양상을 보여준다. 독주자가 악단 전체를 무력으로 이끌고 가는 느낌마저 드는데 이것은 허프의 놀라우리만치 공격적인 속주와 가공할 파괴력 때문일 것이다. 1악장 카덴차에서도 그의 폭발력은 눈부시다. 전투 모드, 낭만 모드를 모두 겸비한 그의 음악 감성은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황홀할 정도이다. 2악장의 목관 서주는 이어지는 현의 숨결과 유기적인 흐름으로 연결돼 1악장 종결 후 깊어진 고양감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다. 허프의 피아노는 그만의 꿈틀거리는 뜨거운 생명력을 오롯이 낭만화하고 있다. 격정과 짙은 서정이 공존하는 완서악장은 제법 빠른 호흡으로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다. 이질적이면서도 도무지 그에게 빨려들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마력을 지녔다. 어떤 면에선 재즈적인 자유분방한 흐름도 보이고 그런 와중에 적확하고 단단한 틀을 확고히 하며 민첩하고도 강건한 모습도 결코 잊지 않는다. 곧바로 이어지는 3악장은 예상대로 아찔한 고강도 템포로 나아간다. 다시 야수의 본능이 되살아난 허프의 속주는 오케스트라를 압도한다. 그러나 김은선의 강공 지휘도 만만치 않다. 허프에 밀리지 않는 탄탄한 서포트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여성 지휘자 특유의 섬세함과 역설적으로 강력한 지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이상적 해석'을 제시하는 느낌이다. 후반부로 가면서도 그들의 체력은 여전히 뜨겁다. 이 괴물 같은 작품을 괴물들이 연주하면 아드레날린의 과다분비가 엑스터시로 발현된다. 특히 이 작품의 코다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되는데 결국 김은선이 다소 흥분했는지 서울시향 앙상블에 과부하가 걸리는 부분도 있다. 믿기지 않는 미친 스피드로 몰고 가는 '코다'는 아마도 실연에서 볼 수 있는 최대치의 연주가 아닐까 싶다. 진정 판타스틱한 연주였다.


앙코르로 연주된 '아리랑'은 수많은 농도 짙은 서정적 편곡판이 존재하지만 오늘 그의 연주는 감수성을 최고조로 이르게 하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도대체 그는 어찌 이리 멋진 인간이란 말인가!! 두 번째 앙코르, 영화 "뮬란" '리플렉션' 편곡판은 마치 뉴에이지 음악 같은 상큼한 연주였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소리는 현장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


오늘 지휘를 맡은 김은선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그녀는 최근 베를린필과 이 곡을 지휘해 더욱 그의 캐리어가 빛나는 중이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은 <교향곡 2번>에 비해 그렇게 자주 연주되는 작품은 아니기에 대부분의 애호가들에게 낯선 곡이지만 수년 전,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의 내한공연에서도 연주된 작품으로 당시 직접 목격했던 훌륭한 연주가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오늘 김은선의 해석은 충분히 기대해 볼 만했다. 예상대로 도입부터 대단히 유려한 색채감과 앙상블의 밸런스가 빼어난 느낌이다. 여성 지휘자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장쾌한 악상이 만나 이상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목가적인 주제부 선율이 짙푸른 전원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데 '전원일기' 타이틀 음악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 듯하다. 서울시향의 음향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지휘자와의 탁월한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향 역시 지휘자를 상당히 가리는 악단이기에 이런 유려한 앙상블이 구현되는 것만으로도 서로 '음악적인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이란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폭발적인 총주에 이어 서정적인 주제부가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질감도 꽤 일품이다. 서울시향이 유러피언적인 소리를 내주는 경험을 전파를 통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저 한탄스럽다. 악장을 맡은 웨인 린의 빛나는 바이올린 독주부도 발군의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악장의 목관부는 쇼스타코비치를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는데 급 "김은선의 쇼스타코비치"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어느 매체에서 세계 여성 지휘자 순위를 발표했는데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지휘자가 바로 김은선이다. 의외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에 와서야 폭발적으로 관심이 쏠린 느낌이다. 이렇게 인정받는 이유를 연주회를 통해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김은선의 강점은 오케스트라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피동성이 주는 텐션의 저하는 불가항력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동기부여가 확고부동한 연주는 작품의 낮은 대중성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3악장의 육감적인 움직임은 오히려 왜 이 작품이 자주 연주되지 않는지 의아하게 한다. 오늘 목관의 기능성은 최적의 소리를 들려줬다. 나긋나긋하고 능글맞은 연주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정도다. 피날레를 향해 달리는 서울시향은 점점 스피드를 올린다. 진정 드라마틱하고 세련된 코다였다.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완주한 느낌이 들만큼 벅찬 감동을 선사해 준 연주였다. 사이먼 래틀, 베를린필의 내한공연 연주가 안겨줬던 두텁고 무거운 부분을 대부분 걷어내고 신비롭고 산뜻하며 탁월한 해석을 보여줬다. 훌륭한 지휘자가 자아내는 깊은 음악적 성취감을 감동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오늘 연주회는 앞으로도 지휘자 김은선이 더 자주 국내 공연무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한다. 진심으로 그녀의 무궁한 승승장구를 기원한다.


7.11


[참고]


우레: 여름날 소나기 올 때 천둥 치는 것을 '우레'라고 하는데, 이 '우레'의 기원은 순우리말 '울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울다'의 어간 '울'에 어미 '에'가 붙어서 이뤄진 말로 고어에서 쓰던 순수 국어다. 이것 때문에 종전에 쓰던 우뢰(雨雷)라는 한자는 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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