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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jan Jul 12. 2024

정명훈-KBS교향악단ㅣ슈베르트 & 로시니 (7.12)

#실황중계리뷰


정명훈 - KBS교향악단ㅣ슈베르트 & 로시니


7.12(금) / 20:00

롯데 콘서트홀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김승직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합창/ 안양시립합창단, 인천시립합창단


지휘/ 정명훈

연주/ KBS교향악단


#정명훈 #KBS교향악단 #Schubert #Rossini

#황수미 #김정미 #김승직 #사무엘윤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정명훈이 사실상 'KBS교향악단'의 새 음악감독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미 지휘자 정명훈에게 계관지휘자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K향이지만 이번 소식은 그리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이 부임한 지 3년 만에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결정이 난 사안으로 논쟁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므로 앞으로 이어질 그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리라.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은 '잘해야 본전'인 작품인 만큼 뻔한 해석을 지양해야 한다. 오늘 연주는 제법 '느린 도입부'에 이어 단계적으로 템포 스피드를 올리는 명석한 접근법을 보여줬다. 확실히 2악장에서는 안정감 넘치는 목관군의 운용과 격렬하게 반응하는 현악을 적절히 융합한 고품격의 앙상블을 보여줬다. 감각적인 템포루바토는 로맨틱한 감성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영적으로 끝맺는 코다는 상당히 공감되는 해석으로 다가왔다. 결국 거장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명곡' 프로그램에서 확고하게 두드러지는 오랜 음악적 경험과 깊은 영감의 흔적은 그냥 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로시니 스타바트 마테르 (슬픔의 성모)


이 곡은 정명훈이 자주 연주하는 작품이고 빈필하모닉과 함께 DG에서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깊은 통찰력을 지닌 정명훈이기에 오늘 연주는 그의 지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무대이다. 사실 빈필과 녹음한 DG 음반에 대해서는 할말하않이나 (테너 라울 지메네스의 미스 캐스팅과 빈필의 무성의한 연주 등) 전반적으론 짜임새 있는 결과물이라 들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음원이다.


오늘의 솔리스트는 국내에서 소집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고 작품의 권위자가 지휘하는 연주이니 기대치는 높다. KBS향은 아직 정명훈의 지휘봉에 완벽히 적응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그가 정식으로 부임하면 훨씬 유려한 음색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2곡의 테너 솔로는 김승직의 단단한 목소리 위에 밀도 높은 반주가 입혀지며 만족스러운 앙상블을 이뤘다. 대단히 아름다운 선율과 테너의 오페라적 독창이 어우러지는 핵심적인 부분으로 작품의 성패가 좌우되는 중요한 곡이라고 생각되는데 테너 김승직의 깊고 훌륭한 가창이 큰일을 해냈다. 3곡에서 소프라노 황수미와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이중창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서로 경쟁하듯 폭발적인 가창력이 어느 순간 소름 돋는 융합을 이루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정명훈의 오페라 반주 같은 흥미로운 서포트 역시 일품이었다. 4곡에서 사무엘 윤의 독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바그너 가수 특유의 중후한 무게감과 명쾌한 발성의 조화는 그만의 명성의 이유를 새삼 일깨운다. 로시니 음악이 자아내는 어여쁜 선율의 흡인력은 순간 이 곡이 <슬픔의 성모>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5곡은 반주 없이 순수 아카펠라로 연주된다. 독창자, 합창단이 어우러지는 목소리의 화합은 다시 강력한 종교적 색채를 띤다. 이제 반환점을 지나 6곡은 다시 로시니 특유의 음악적 형태로 회귀한다. 모든 솔리스트가 부르는 아름다운 사중창은 환희로 가득하다. 마치 진한 슬픔을 묘사하는 듯하다가 신나는 중창을 선보인다. 그들이 이루는 '네 목소리의 믹싱'이 제법 신선하다. 메조소프라노 독창인 7곡 '카바티나'는 김정미의 드라마틱하고 볼륨감 있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깔끔한 비브라토, 맑은 음성은 그녀만의 중요한 강점인 듯하다. 8곡은 소프라노, 합창의 강렬하고 격정적인 앙상블로 이뤄진다. 마치 <베르디 레퀴엠>을 연상케 하는데 물론 곡의 성향은 서로 많이 다르다. 황수미는 맑고 고운 소리이지만 적당한 무게감을 지녀 극적인 표현력이 훌륭하다. 이전에 그녀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공연했을 때 제법 무겁게 들렸던 순간이 생각났지만 적어도 이 곡에서는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9곡은 5곡과 마찬가지로 합창과 독창자 아카펠라로 연주된다. 대단히 극적인 인토네이션이 공간의 울림을 압도하는데 오늘 연주도 가슴을 진동하는 긴장감과 강도 높은 장쾌함을 안겼다. 드디어 10곡 '피날레'가 전 출연진의 강력한 총주로 시작된다. 이 곡은 종교적 색채와 대중성이 겸비된 오묘한 매력이 있는데 음악적 쾌감이 거대한 카타르시스로 승화되는 깊고 파괴적인 악상을 지녔다. 1곡 도입부 선율이 다시 반복되는 순간, 곧바로 뜨거운 폭발력으로 몰아치며 코다에서 강렬한 종결을 맺는다. 정명훈 특유의 감성충만한 기승전결 과정이 완전한 파이널로 잘 구성된 느낌이다. 역시 이 작품에 있어서 탁월한 해석가인 정명훈을 온전히 증명했으니 확실히 '대가는 대가'인 모양이다.


정명훈, KBS교향악단 조합이 시작되면 해야 할 과업들이 많다. 그간 뜸했던 음반녹음 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말러 시리즈" 등 반드시 시도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넘쳐난다. 모두의 우려처럼 혁신적이지 못한 프로그램으로 매 순간 재탕을 우려내는 뻔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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