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2월 3, 4일,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 홀에서는 당시 84세(임종 3개월 전)였던 오이겐 요훔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이 연주되었다. 그리고 이 날 기록은 그의 마지막 공연을 담은 실황 녹음으로 역사 속에 남겨진다. 무려 82분이 넘는 러닝타임은 유장한 흐름을 보이지만 조금도 빈틈이 없고 단단하다. 매 순간 압도적인 음장감은 거인의 발걸음처럼 깊은 울림과 가슴 떨리는 고양감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는 프란츠 벨저-뫼스트와 런던필하모닉의 빈 실황을 동곡 최고의 연주로 꼽지만 '요훔 실황'은 그들과 완전히 결이 다른 절대 명연이다.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세련되고 파워풀한 사운드와 독보적인 화력으로 중무장된 장쾌한 연주라 한다면 요훔은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녹여내 오랜 세월 동안 단련된 뜨거운 쇳덩어리 같은 연주이다. 비록 느리게 나아가지만 깊고 확고한 흔적을 남기며 진중하게 전진한다. 이것이 바로 요훔이 추구하는 브루크너의 전형이다. 전반부를 무겁고 강렬하게 짓누르는 '아다지오 악장' 이후 이어지는 3악장 '몰토 비바체'는 가장 짧은 악장이지만 1, 2악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기를 띄며 묵직한 잿빛 구름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피날레를 향하여 나아가는 중요한 가교로서 도입과 코다가 같은 선율로 구성된 구조적인 특성을 절묘하게 살려주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 작품의 극적인 기승전결을 만들어낼 필요충분조건은 이토록 중요하고 절대적 반복구들을 얼마나 효과적인 다이내믹(음악적 에너지의 조절)으로 확고한 방점을 찍느냐의 문제이다. 시작과 끝이 같으면 감각의 역치로 인해서 인상이 뚜렷하게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극한의 충격량을 극대화하는 방식도 지나치게 노골적인 접근이다. 거장 오이겐 요훔은 과거 그의 수많은 음악적 경험치에서 우러나온 최적의 접점을 찾아 구체화하는 브루크너 대가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코다에서 내뿜는 극단적 폭발력과 카타르시스는 응축된 금관의 힘, 템포 루바토의 효과적인 조율, 그리고 격한 총주의 다이내믹으로 거침없이 표출된다. 오디오적인 쾌감도는 벨져-뫼스트가 분명 앞서지만 실황 연주 고유의 열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역시 요훔이 한 수 위다. 그의 생애 마지막 연주를 담은 기록이라는 역사성과 함께 거장이 남긴 최고의 브루크너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이 음원이 지닌 가치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브루크너 연주 기록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증거이며 모두의 필청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