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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jan Oct 13. 202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ㅣ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外

#오늘의선곡


J. Sibelius

Tone Poem "Finlandia" Op.26

Violin Concerto Op.47

Symphony No.5 Op.82


Violin/ Christian Ferras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armoniker


#ChristianFerras #Sibelius

#HerbertvonKarajan #BerlinerPhilharmoniker


<핀란디아>는 카라얀을 통해 가장 처음 접했지만, 그보다 먼저 영화 <다이하드 2>의 마지막 부분, 브루스 윌리스가 활주로에 쓰러지면서 테러리스트의 여객기가 폭발하는 장면에서 흐르던 배경음악으로 더욱 각인된 작품이다. 사실 카라얀, 베를린필의 연주는 이 교향시에 내재된 북구 핀란드 고유의 정서를 오롯이 표현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여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음원이긴 하지만 연주 자체의 질적인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 "핀란디아 찬가"는 지나치게 카라얀만의 스타일로 그려내 꽤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만 핀란드인이 연주한 본토의 연주에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거부할 수 없는 음악적 매력으로 가득하다.


크리스티안 페라스의 슬픈 바이올린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서주부터 거칠고 날카롭게 폐부를 가른다. 이보다 더 내 가슴을 사정없이 할퀴는 바이올린 음색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카라얀과 베를린필은 차가운 꿈결처럼 가슴 시린 보잉에 매섭게 반응한다. 크리스티안 페라스의 타오르는 활은 분명히 시벨리우스가 꿈꾸던 이상향일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존재하는 연주자다. 나는 페라스의 연주를 들으며 조금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믿음은 곧 신앙이며,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오리지널 버전 녹음도 남겼더라면 얼마나 귀한 자료일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왜 그가 그토록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 신마저 그의 빛나는 재능을 질투한 탓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그의 교향곡인데, 그만큼 내 마음에 온전히 만족스러운 연주를 찾기 쉽지 않다. 핀란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 라티심포니의 연주가 제법 이상향에 가까운 연주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역량은 다소 아쉬움이 있다. 카라얀은 평생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애정했던 지휘자였으나 그의 해석이나 음색은 정통적인 방향과 거리가 있다. 그러나 <핀란디아>처럼 '카라얀의 시벨리우스'는 핀란드 특유의 정서적 관점이 아니라 오로지 카라얀의 시각으로 봐야 하기에 그에게 핀란드 대자연 그대로를 바라는 것은 가혹하다. 그래서 이 연주는 전형적인 카라얀의 맛과 식감을 지닌 독일형 핀란드 요리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자세가 감동의 정도를 좌우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카라얀의 시벨리우스"는 하나의 큰 줄기로서 중요한 위치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시벨리우스의 계절이 돌아왔다. 밤공기는 차갑고 시벨리우스의 선율은 시큰하고 청명한 기운으로 가슴속 어두운 곳까지 서늘하게 적셔온다. <교향곡 5번> 피날레의 장엄하게 울리는 총주의 외침은 한겨울 핀란드의 풍경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벅찬 환희를 안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전하는 이 충만한 감동은 성령강림의 감격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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