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프게니 코롤리오프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은 그가 J. S. 바흐의 작품들을 들려줄 때와 같이 정갈하고 단아한 해석과 깊이감 있는 타건을 보여준다. 다만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처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끝없이 파고드는 연주라기 보다 폴 루이스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그 사이 어디 쯤에 존재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다. 어느 순간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다가도 결국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로 여행하는 자유로운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코롤리오프의 타건은 고혹적이면서 큐티한 면이 강하다. 강력한 포르테시모의 타격도 깔끔하고 예쁘게 폭발한다. 무언가 선하고 강인한 힘이랄까. 중용미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장난꾸러기 같은 어린 아이를 보는 듯, 엷은 미소를 띄게 하는 그의 연주는 봄기운이 가득하다. 1악장 "모데라토"의 깊고 아름다운 선율은 2악장 "안단테"에서 슬프고 낭만적인 슈베르트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중반 전조 이후, 맑고 달콤하게 울리는 소릿결은 지극히 몽환적이다. "슈베르트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의 2악장은 세상의 모든 '애가(哀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 이라는 알프레드 브렌델의 찬사처럼 나의 가슴을 살포시 어루만진다. 짧은 3악장 "스케르초"는 해맑은 아이처럼 들판을 신나게 뛰어 놀다가 4악장 피날레에 이르면 오랜 우울 속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벅찬 환희와 청명함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격정과 환희의 정서적인 공존은 조울의 극치이기도 있지만 이보다 슈베르트적인 순간도 없을 것이다. 당당하게 부서지는 코다는 상큼한 짜릿함이 전율을 선사한다.
<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D.780>은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에 비해 보다 자연스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J. S. 바흐 골드베르크와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은 독일 건반 예술의 빛나는 이정표이다. 이 둘을 자연스레 연결하는 코롤리오프의 연주는 오묘함을 넘어 심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심플하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식이다. "악흥의 순간"은 나의 고막부터 심장까지 하나하나 정화되는 순간들이다. 내 삶이 뜻대로 흐르지 않을 지라도 음악이 흐르는 '지금 이 순간'은 치유 받는 시간이며 내 영혼의 평온한 안식의 공간인 것이다. 슈베르트의 '어둡지만 아름다운 조울'은 그래서 지친 삶에 더욱 큰 위안으로 다가오는 것이리라. 그의 음악이 코롤리오프의 '선함'을 거쳐 포근히 보듬고 위로하는 순간을 만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