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원을 오래전에 처음 들었을 땐 참 놀라웠는데 지금 다시 만나니 감각의 역치값이 많이 무뎌진 탓인지 대체로 평이하게 다가온다. 물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특유의 쾌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좀 지나치게 느껴지는 템포 루바토도 그이기에 이해가 된다. 쾌속의 명쾌한 진행은 가히 매력적이다. 2악장을 바이올린 솔로로 종지 없이 어어가는 시도는 나름 그럴듯하다. 파괴적인 모티브도 잘 살렸고 설득력 있는 흐름도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3악장은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흐르지만 제법 과도한 목관 솔로의 자유분방함이 양념처럼 맛의 변화를 준다. 로열필하모닉의 음색은 대단히 선이 가늘고 섬세하다. 그러나 그것이 극적인 장단점을 지니기에 이 곡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오묘한 어울림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4악장은 훌륭한 피날레로 손색이 없다. 이전 악장들이 이질적 성향이 강하다면 후반 흐름은 스토코프스키의 해석에 적응이 된 탓에 제법 궁합의 일치가 이뤄진 듯하다. 단, 코다의 여린 감성 속에서도 테크닉적인 아쉬움은 긴 여운처럼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
림스키-코르사코프ㅣ러시아 부활제 서곡
시카고심포니는 전혀 의심의 여지없는 탄탄한 앙상블로 곡의 서문을 연다. 오케스트라의 기량적 차이는 확연히 드러나는데 현의 두터운 음색이나 금관군의 무게감 있는 사운드는 어쩌면 서로 작품이 뒤바뀐 것 같은 아쉬움을 준다. 덕분에 이 작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으니 이 연주만의 의미는 충분하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 씁쓸한 뒷맛은 도무지 막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