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정체성

by Karajan

덕진예술회관은 1980년에 지어진, 매우 오래된 공연장이다. 사실 이곳은 공연장이 아니라, 과거의 명칭은 반공회관이었다. 투박하고 밋밋한 건물 외관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반공정신을 오롯이 함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늘 민방위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더욱 강렬하게 남아 있기에 내게 이곳은 결코 '공연장일 수 없는' 곳이다.


아주 오래전, 전주에 공연장이 거의 없던 시절, 오트마 마가와 KBS교향악단의 공연이 이곳에서 열렸었다. 당시 이곳은 말로 차마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해 내가 다 부끄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재는 무대와 좌석 리모델링이라도 돼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시설 상태와 (특히 화장실이 열악해 민망할 정도다) 실망스러운 홀사운드는 안타까울 지경이다.


올해 전주비바체실내악축제가 그동안 열렸던 치명자산 천주교 성지 평화의전당이 아닌, 이곳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이틀 동안 공연을 경험하고 난 이후의 소감은, 역시나 우려했던 부분이었던 공연장으로서의 부적합, 홀톤의 안쓰러움 등 단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나, 생각보다 평화의전당의 어수선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차분하게 진행되는 점도 있어 나름 장단점은 있는 것 같다.


전주도 이곳 덕진예술회관을 이젠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고 이 자리에 부산콘서트홀, 부천아트센터(만큼은 아니라도)와 같은 클래식 전용홀을 지었으면 좋겠다.(라고 상상만 해본다)


"전주는 멋과 맛의 고장이라기보다는 소리의 고장이다."

오늘 공연 시작 전 무대에서 전북대 총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별 기대 없이 듣다가 생각지도 않게 크게 와닿았던 말이다.


그렇다. 누가 뭐라 해도 전주는 소리의 고장이다.(요즘 전주엔 예전과 같은 맛집이 많이 사라졌다, 전주 와서 맛집 찾지 마라) 그래서 전주는 이제 '소리'를 살려야 진정한 전주만의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러니 이젠 전주에 진정 제대로 된 공연장이 새롭게 지어져야만 한다. 덕진예술회관의 존재는 소리의 고장, 전주로서는 그야말로 치욕의 증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36년에 전주에서 뜬금없이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한 정치인들께 진심으로 고하고 싶다. 올림픽을 빌미로 콘서트홀 하나 온전하게 지어달라고 정부에게 당당히 요구하기 바란다. 돈 없는 거 다 안다. 공연장 지을 돈이 어딨겠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한, 쥐어짜도 예산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정부에게 요구해라. 소리의 고장 전주니까 지어달라고 말이다.


올림픽 유치는 관심이 없지만, 그로 인해 체육, 문화, 예술 분야 시설의 확충이 이뤄진다면 무조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임을 엄중히 밝힌다. (참나, 네가 뭔데 이런 헛소리를 하느냐!!)


이젠 전주아트센터, 전주콘서트홀 하나 짓자. 제발 부탁이다.


사진/ 전주비바체실내악축제, 첫날 & 둘째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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