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ㅣ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12.6(토) / 17: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노/ 엘리소 비르살라제 (Elisso Virsaladze)
지휘/ 아지즈 쇼하키모프 (Aziz Shokhakimov)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Korean National Symphony)
R. 슈만 피아노 협주곡 Op.54
R. Schumann Piano Concerto Op.54
D.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Op.103 "1905년"
D. Shostakovich Symphony No.11 Op.103
<Encore>
F. 쇼팽ㅣ마주르카 Op.68 No.2
D. 쇼스타코비치ㅣ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배스 부인" 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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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슈만 피아노 협주곡 Op.54
엘리소 비르살라제(Elisso Virsaladze)는 1942년 생으로 여든이 넘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 피아니스트이다. 그녀는 종종 한국을 찾았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으나 오늘 드디어 그녀를 영접할 수 있었다. 오늘 공연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때문에 온 것이지만, 나로서는 무대 위의 비르살라제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도 제법 컸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주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협연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으신 탓도 있고, 대단히 자유분방하게 템포 루바토를 가하다 보니 오케스트라와 어긋나는 부분들이 과하게 많았다. 또한 그리 명징하지 못했던 타건과 잔실수는 다소 맥 빠진 연주로 표출됐다. 특히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곡 자체의 특성상 효과적인 음향 임팩트를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이고 지휘자와 웬만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음악이 살지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연주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앙코르로 들려준 <쇼팽 마주르카 Op.68-2>는 역시 독주자로서의 비르살라제만의 진가를 각인시켜 준 연주였다. 노 거장의 진면목은 어쩌면 홀로 섰을 때 진정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일 수 있기에 그 자체로 내겐 소중한 경험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D.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Op.103 "1905년"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Aziz Shokhakimov)는 온몸이 흥으로 가득했다. 1부에선 비르살라제의 자유분방함에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쇼스타코비치에서는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기량을 음악에 오롯이 쏟아내면서 국립심포니의 단원들 모두를 신명 나는 춤판으로 몰아넣었다. 쇼스타코비치 최고의 교향곡으로 이의가 없을 이 곡을 확고한 음악적 신념, 무대 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완벽한 자신감을 통해 최고의 결과로 만들어냈다.
전 악장이 고른 완성도를 보인 흔치 않은 연주회였다. 국심이 그동안 보여준 그들만의 장점은 지휘자에게 적확한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마치 지휘자의 해석을 AI처럼 명확히 실연시키는 입-출력이 명확한 오케스트라이기에 지휘자가 가진 음악적인 방향성을 확고하게 실연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나 기계적인 로봇 같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는 극단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이는 오늘 공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작품이 지닌 "1905년의 참상"을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연주라기보다 완벽하게 기능성을 추구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이런 점이 유달리 쇼스타코비치에서는 용인된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만점을 줄 순 없지만 합격점으로선 부족함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토요일 이른 오후 공연이었던 탓에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콘서트홀을 짓눌렀다. 1부 공연의 아쉬움도 한몫했을 테다. 그러나 1악장 시작부터 오늘 여기에 오기까지 숱하게 들었던 이 교향곡이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정제된 현의 깔끔한 움직임, 때가 되면 미련 없이 포효하는 금관, 타악군은 삶에 엉켜있던 마음까지 뚫어주는 기폭제였다. 무엇보다 큰 인상을 남겼던 건, 완벽한 앙상블과 세련된 음색을 선사했던 목관군의 대활약이었다. 음반을 통해선 제대로 알기 어려운 목관의 움직임은 오늘 내 두 눈에 또렷이 들어왔고 온전하게 나의 가슴과 정서를 녹여준 일등공신이었다. 4악장 잉글리시 호른의 독주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각인될 장면이기도 했다.
이 교향곡이 안기는 피날레의 폭발적인 장쾌함은 다른 모든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을 능가한다. '경종'과 함께 장렬하게 산화하는 오케스트라의 총주는 언제 들어도 놀라운 충격파를 가한다. 그 어느 곡보다 강렬한 폭격으로 종결되는 코다지만 '경종의 울림'이 모두 다 사라질 때까지 객석은 완벽한 침묵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도 일부 관객의 성급한 박수는 그 놀라운 감흥을 처참하게 깨부수고 말았다. 이것은 휴대폰 벨소리보다 더 악랄한 '관크의 전형'이다. 기다림의 미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에 터진 테러는 언제나 화가 나지만 이제는 체념할 때도 된 것 같다. 공연 중에도 무수히 벌어지는 관크 행위는 오롯이 연주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너무나 쉽게 꺾어버리곤 하는데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아픈 경험이 된다.
관객들의 박수갈채 속에 커튼콜이 이어지는데 쇼하키모프가 지휘대 위에 돌연 올라선다. 그리고 앙코르 연주가 시작됐다.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간주곡>이 연주되고 무대는 다시 뜨겁게 들끓어 올랐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이후에 므첸스크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탁월한 선곡이었고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의 남다른 끼를 확고히 각인시킨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이 '부산콘서트홀'에서 오늘의 공연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날의 음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사운드가 부산에서 완벽한 울림으로 성사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산의 관객들이 그들과 함께 격한 환희의 순간들을 만끽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