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후 인발-KBS교향악단ㅣ쇼스타코비치 "바비 야르"

by Karajan

#공연리뷰


엘리아후 인발-KBS교향악단ㅣ쇼스타코비치 "바비 야르"


2.28(토) / 17: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이스/ 그리고리 슈카루파 (Grigory Shkarupa)


지휘/ 엘리아후 인발 (Eliahu Inbal)

연주/ KBS교향악단 (KBS Symphony Orchestra)


성남시립합창단

용인시립합창단


S. 라흐마니노프ㅣ"죽음의 섬" Op.29

S. RachmaninoffㅣThe Isle of Dead Op.29


D. 쇼스타코비치ㅣ교향곡 13번 "바비 야르"

D. ShostakovichㅣSymphony No.13 "Babi Y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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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라흐마니노프 "죽음의 섬">은 고속도로 정체로 도착이 늦어진 탓에 시원하게 놓쳤다. 그러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오늘의 공연을 위한 상경 목적이 "바비 야르"였기 때문이고, 오롯이 쇼스타코비치에 집중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기회'라는 긍정론이 아쉬움을 잠재워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무겁고 부담스러운' 작품에 온전히 비워진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D. Shostakovich Symphony No.13 "Babi Yar"


I. Babi Yar: Adagio

II. Humour: Allegretto

III. At the Store: Adagio

IV. Fears: Largo

V. Career: Allegretto


올해 90세를 맞이한 살아있는 거장, 엘리아후 인발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했다. 아니다, 오히려 웬만한 지휘자보다 더욱 활기가 돌았다.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노 거장의 발걸음은 얼마 전 도쿄에서 <말러 교향곡 8번>을 무려 3일간 지휘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서울까지 달려와 쇼스타코비치를 요리하러 온 듯했다. 앞으로 10년 쯤 거뜬히 무대 위를 누빌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관객 모두가 그렇게 느낀 듯했다.


오늘 공연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교향곡에 담긴 짓누르는 무게감을 말끔히 걷어내고 인발 특유의 매끈한 흐름에 가속 페달을 밟는 레이서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 일반적인 연주, 여러 음원들이 주는 무거움과 부담감을 잊고 지루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속전속결의 결론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이는 관객의 호불호를 극명하게 가르는 요소라고 하겠는데, 인발 해석의 묘미이면서 치명적인 방향성과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접근법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면서 부정할 수 없는 아쉬움과 비판적 시각도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은 90세 거장, 엘리아후 인발의 놀라운 마법이기도 했다.


베이스 그리고리 슈파루파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의 러시아 성악가로 오페라 전문이긴 하지만 역시 쇼스타코비치 작품에 임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자부심이 깊게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인발 해석의 영향인지 기대했던 강력하고 거친 러시안 사운드라기보다는 '러시아 오페라'를 듣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 전반적으로 그의 역할은 설득력이 강했고 유려한 러시안 딕션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만 남성합창단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다. 악단과 앙상블이 어우러지지 않고 단절되는 부분도 제법 있었고 무엇보다 강한 중량감을 줘야 하는 역할임에도 대체로 가벼운 흐름으로 일관했다. 2년 전, 홍석원-광주시향 "바비 야르"를 경험했던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때와 대척점을 이루는 연주라고 총평했다. 당시의 연주(국내 초연)가 진중한 무게감과 긴장감이 가득했다면, 오늘은 지나치게 날렵했다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취향적 호불호의 문제로, 그들의 죄(?)를 물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쇼스타코비치 전문 악단, K향'의 연주는 훌륭했다. 지휘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살리면서 그동안 보여줬던 수많은 열연들을 떠올리게 하는 놀라운 기능성과 문득문득 느껴지던 여유로운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객원 악장인 문바래니(WDR 쾰른 제2 바이올린 수석)의 활약상도 놀라웠다. 그녀의 통제력과 솔로 파트에서의 활기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강렬한 표현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고 작품의 흐름을 주도했다. 역시 객원 수석인 플루트 유지홍은 5악장 도입부 플루트 선율을 완벽한 호흡과 깔끔하고 아름다운 소리로 이끌며 만족감을 주었고 클라리넷 조성호(도쿄필) 수석과 호른 김홍박(서울대) 수석의 뜨거운 활약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팀파니 이원석 수석의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타격은 오늘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을 연출한 장본인이었다.


객석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간혹 부스럭거리는 잡음이 없진 않았지만 근래 보기 드문 감상 태도로 큰 거부감 없이 공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관객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아마도 작품 성격상 마니아층 관객이 객석에 자리했던 듯했고 모두가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던 흔치 않은 연주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쩌면 노 거장, 인발 지휘자와 쇼스타코비치 음악에 대한 예의를 다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콘서트홀을 나서니 '미국의 이란 폭격' 뉴스가 속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오늘 연주된 작품이 '죽음'을 공통된 화두로 묘사한 음악이고 특별히 "바비 야르"는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건(1941년 9월 29일부터 30일까지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 있는 '바비 야르' 협곡에서 독일군이 3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 당시 소련 정부는 '소련인의 희생'으로 뭉뚱그려 서술하며 구체적 기억을 억압했다:공연브로셔 내용 참고함)을 그린 교향곡 작품이기에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깊은 자괴감이 일었다.


이스라엘인, 엘리아후 인발에게 이 작품은 특별했을 것이다. 그가 오늘 들려줬던 "바비 야르"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지만 그의 마음엔 '유대인의 학살과 비극에 대한 뜨거운 울림'으로 이 교향곡을 연주하는 동안 남다른 감정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투영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 연주를 이곳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관객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의 힘찬 지휘를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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