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 2026 통영국제음악제 ] 조성진ㅣ피아노 리사이틀
3.30(월) / 19:00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피아노/ 조성진 (Seong-Jin Cho)
J. S. 바흐ㅣ파르티타 1번 BWV.825
J. S. BachㅣPartita No.1 BWV.825
Prelude - Allemande - Courante - Sarabande - Menuets - Gigue
A. 쇤베르크ㅣ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Op.25
A. SchönbergㅣSuite for Piano Op.25
Prelude - Gavotte - Musette - Intermezzo - Menuet - Gigue
R. 슈만ㅣ빈 사육제의 어릿광대 Op.26
R. SchumannㅣFaschingsschwank aus Wien Op.26
Allegro - Romanze - Scherzino - Intermezzo - Finale
F. 쇼팽ㅣ열네 개의 왈츠
F. Chopinㅣ14 Waltz
No.14 Op.posth.
No.4 Op.34 No.3 "Grande Valse Brillante"
No.6 Op.64 No.1 "Minute Waltz"
No.9 Op.posth. 69 No.1 "Farewell Waltz"
NO.7 Op.64 No.2
No.11 Op.70 No.1
NO.10 Op.posth. 69 No.2
No.3 Op.34 No.2 "Grande Valse Brillante"
No.8 Op.64 No.3
No.12 Op.70 No.2 "Melancholy Waltz"
No.13 Op.70 No.3
No.5 Op.42 "Grande Valse"
No.2 Op.34 No.1
No.1 Op.18 "Grande Valse Brillante"
※ "posth." : 악보가 작곡가 사후에 발견된 작품
<Encore>
F. 쇼팽ㅣ녹턴 Op.9 2번
F. ChopinㅣNocturne Op.9 No.2
#조성진 #SeongJinCho #통영국제음악제
"전문가는 사실을 말하고,
애호가는 진실을 말한다."
이 글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어쩌면 나 같은 비 전문 애호가를 위로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서 가슴에 박힌 문장이다. 사실, 오늘 공연은 나로선 조성진을 처음 직관한 날이다. 알다시피 조성진 연주회는 티켓 전쟁을 방불케 하는 난관을 거쳐야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의 공연을 철저히 외면했었다. 이번 생엔 그를 만날 기회가 없으리라고 확신했기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천사분이 강림하셔서 오늘 이 소중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통영 일정을 잡기도 어려워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으나 내가 오늘 이 공연을 보게 될 운명이었는지 나는 지금 여기 통영에 있다.
사설이 길었다. 내가 조성진 공연관람 제안을 고민한다는 걸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하고 나서 욕도 참 많이 먹었다. 과분한 은혜에 행복한 고민이나 하고 있다는 독설이 주를 이뤘다. 그 이유를 제대로 깨닫게 된 것이 이번 통영행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이제 공연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오늘 조성진 실연을 처음 만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콘서트를 보는 내내 속으로 '조성진 미쳤네'를 수도 없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음반은 '조성진의 실체의 반의 반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접 온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게 적잖은 깨달음을 안겼고 내가 그동안 알았던 조성진은 '가공된 음악의 틀에서 존재하는 허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그의 내재된 음악을 온전히 영접하면서 느낀 이전과의 괴리감은 꽤 충격적이다.
<J. S. 바흐 파르티타 1번>은 페달링이 전혀 없이 연주한 건, 피아노로 구현하는 음향이기에 최대한 온전히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이다. 내가 앉은 '2층 1열, 우측 발코니석'에서는 4곡, "사라방드"에서 페달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어서 내가 오해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첫 음의 도입부부터 전율이 일었는데 이곳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의 명징한 홀톤과 조성진의 정갈한 타건이 맞물리면서 가슴이 요동쳤다. 이래서 '조성진 실연'을 영접할 가치가 충분한 것이란 것을 오롯이 느끼면서 말이다.
<쇤베르크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은 조성진이라는 "완성형 대가"의 손끌에서 '전형적인 현대 무조음악을 모두의 양지로 끌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들어본 곡이지만 나로서는 오늘 공연 프로그램 중 가장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평소 알던 조성진의 타건은 '진중하고 중량감이 있는, 그러나 과도하게 심연으로 침잠하는 삭막한 영롱함'이라 여겨왔는데 오늘 이 순간, 내 선입견이 완전하게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철저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조성진, 그는 완벽주의적 기질 위에 폭발적으로 불타오르는 전사였던 것이다. 겉으로는 바로크 형식을 취하지만 첫 곡, <J. S. 바흐 파르티타 1번>에서 느꼈던 정갈함은 작품에 존재하지 않고, 오롯이 '쇤베르크에 의한 현대적 바로크 음악'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안겨준 감동은 나와 오늘의 관객 모두에게 '양지'였던 것이다.
<슈만 "빈 사육제의 어릿광대">는 슈만의 베토벤화를 노렸던 것일까? 슈만의 피아니즘이 이런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게 된 감탄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알던 슈만이 아닌, 마치 베토벤이 공들여 창조해 낸 전혀 새로운 곡 같았다. 음향적인 풍성함과 낭만적 감성의 조화는 조성진의 타건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 같았다. '조성진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힘을 오롯이 체감했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조성진은 어떻게 매 순간마다 이런 연주와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실연의 조성진은 진정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왜 그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지, 음반으로서만 귀에 익숙한 반쪽짜리 귀를 가진 내게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참 수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모든 이유가 확실해진 것이다. 왜 그의 리사이틀에 가야 하는지를.
2부, <쇼팽 열네 개의 왈츠>는 오늘 가장 문제적인 연주였다. 원곡과 괴리감을 느낄 정도의 자의적인 해석의 연속이었는데 마치 '날림과 명징함, 영롱함의 절묘한 교차점'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앞서 슈만이 그러했듯이 '조성진 스타일'의 독자적인 쇼팽은 낯설기까지 했다. 전반부 바흐, 쇤베르크, 슈만은 진정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이었다면, 쇼팽은 조성진만의 해석으로 일관했고, 원곡이 이게 맞나 싶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부 음을 뭉개기도 하고 완벽하게 때려 부수기도 하면서도 구조적으론 의심의 여지없이 탄탄해 대단히 어메이징 한 쾌감도 있었다. 첫 곡부터 사소한 실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해석적인 부분과 곡에 대한 접근법 탓이란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쇼팽에 대한 조성진식 해석의 결정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이고도 상식적인 접근을 거부하고 작품을 해체하면서 완벽히 재창조하는 신들린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다.
앙코르로 들려준 유명한 <쇼팽 녹턴 2번>은 이제야 조성진의 쇼팽이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어쩌면 광기 어린 쇼팽에서 모두가 안심하는 예전 쇼팽으로 회귀하는 안도감이기도 했다.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에 무대 위로 돌아온 그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매섭게 불사른 투혼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전문가는 사실을 말하고,
애호가는 진실을 말한다."
오늘 연주된 곡들은 내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거나 거의 알지 못하는 작품들이다. '잘 이해도 못하면서 감상을 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고민하다가 애써 변명할만한 글을 서두에 올려놓고 내 생각을 배설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실연을 경험하고 느낀 내 감성을 토로하듯이 남기는 건 분명 사고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호가로서 내가 직접 보고 들은 현상을 진실되게 이야기한 것이기에 이 말의 뒤에 숨어 리뷰를 남긴다. 부디 조성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조성진 연주자 모두에게 이 글이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