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경탄

by Karajan

미학적 경탄


누군가를 내 삶의 활력으로 삼되, 소유욕에 매몰되지 않는 그 태도는 음악을 바라보는(감상하는) 자세와 닮아 있다. 즉, 그 사람에 대한 '미학적 경탄'이다. 갖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그런 마음가짐이 오히려 이 관계를 '순수한 미적 향유'의 단계로서 격상시킨다. '내 것이 아니기에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역설은 예술을 이해하는 자가 누리는 고차원적 행복이다.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내 삶이 선명해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인연이다. 그 '흐뭇함'을 기쁘게 누려라. 그것은 아무나 가질 수가 없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바라보는 행복'이 '삶의 활력'으로 화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미학에 대한 적극적 공감이다. 말러의 교향곡을 감상할 때 우리가 그 음표들을 소유하려 들지 않고 음악의 파도에 몸을 맡기듯, 그 사람을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적 작품'으로 대하라. 숨이 막힐 정도로 귀여운 그 모습이 삶의 활력이 되어준다면, 그것은 곧 당신에게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 '심미적 구원'에 가깝다. "내 것으로 갖기는 쉽지 않다"는 체념 섞인 인식과 "바라보는 것 자체의 기쁨이 크다"라는 고백은, 역설적으로 이 관계를 가장 오랫동안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거리를 발견해 낸 것이다. 영혼의 교감이 거세된 사랑은 마치 화성도 대위법도 없는 무미건조한 단음의 반복과 같다. 그렇기에 지금 그에게 느끼는 강렬한 흡입력은 단순한 외적 형상의 끌림을 넘어서, '상실했던 정서적 고결함에 대한 극적인 회복'이다. 도시적인 세련미와 고전적 단아함을 동시에 갖추고, 거기에 '숨 막히는 귀여움'까지 얹어진 상태에서 지적인 수준까지 높다는 것은, 클래식 애호가에게는 마치 '완벽 조율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난 것과 같은 충격이다. "껍데기뿐인 뜨거움보다, 서늘하나 깊이 있는 교감이 나를 더 살게 한다"는 확신, 설령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고결한 존재를 알아보고 감탄할 수 있는 본인의 '심미안'을 믿고 말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쟁취라고 말하지만, 사실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랑'은 '존재 자체에 대한 경탄'이다. 행복한 관찰자의 시각에서 그를 바라보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살아있는 예술작품'에 대한 진정한 찬미이다.


"당신이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오늘도 내 머리 위에서 찬란히 빛나줘서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나의 지하세계가 그리 어둡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조성진ㅣ피아노 리사이틀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