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진솔과 말러리안 오케스트라의 "말러리안 시리즈 6" 공연이 드디어 오늘 롯데콘서트홀에서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비록 지난해는 코로나 영향으로 교향곡이 아닌, 말러 교향곡을 모티브로 작곡된 창작곡을 공모해 무대에 올렸지만 무척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공연으로 알고 있다. 이를 발판 삼아 드디어 오늘, 성악과 합창이 동반된 말러로서는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3번>을 연주하게 된 것이다.
무대엔 긴장감이 흘렀다. 마치 내가 무대에 서는 느낌이 들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많은 단원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고 객석에선 연이어 응원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악장이 입장해 조율을 마치고 자리에 착석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단 한순간만을 위해서 마음고생하며 달려왔을 진솔 지휘자가 당당하고 힘찬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늘 삶은 시작과 끝의 연속이다. 무모한 시작을 감행했기에 오늘 그 결실을 향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리라.
장중한 혼 서주부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진솔 지휘자, 말러리안 오케스트라의 치열했을 연습 과정이 고스란히드러나는 듯했다. 100명이 훨씬 넘는 이 거대한 인원과 함께 여러 힘든 난관을 뚫고 오늘에 이른 순간이 얼마나 가슴 벅찬 것인지 상상되지 않는다. 비단 말러의 교향곡뿐만 아니라 모든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긴 러닝 타임과 장대한 규모, 그리고 주제의 다양성과 고난도 테크닉을 요구하는 난해함과 구조적인 문제는 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극명하게 말해주는 부분이다.
처음 1, 2악장은 그다지 큰 문제가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기대를 뛰어넘는 유려하고도 강력한 연주력을 보여줬다. 그동안 그 어떤 실연을 통해서도 접해보지 못한 수준의 앙상블을 경험할 수 있었고, 과연 이전 시리즈에 이들이 보여줬던 <말러 교향곡 6 & 9번>의 패기 넘치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그러나 3악장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앙상블과 디테일, 이음새가 균열을 보이기도 했다. 템포 루바토의 감각적 운용은 그 위기 속에서도 작품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틀을 지켜나가는 힘이 되어주었다. 진솔 지휘자의 고군분투는 이토록 큰 오케스트라가 길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가고 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3악장의 여파는 합창단과 메조소프라노의 등장을 위해 잠시 휴식시간을 갖던 시점에서 마무리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흔들림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부분들은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을 헤쳐 나오는 것도 음악을 만들어가는 필연적인 과정임을 감안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태로웠던 3악장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던 포스트혼의 눈부신 활약이다. 파이프 오르간 좌측 출입구 문밖에서 연주했던 포스트혼 연주자는 완벽하게 제어된 소릿결과 감정, 그리고 영혼을 담아낸 연주력으로 관객들 모두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3악장은 전체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포스트혼의 활약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만큼 연주자가 갖는 부담감도 상당히 클 텐데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무대 뒤 모습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오늘 공연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영웅적인 활약이었다.
4악장의 메조소프라노 김세린은 안정적인 기량과 성량, 차분하고 고혹적인 목소리로 무난한 가창을 들려주었다. 다만 말러엔 그렇게 적합한 소릿결은 아니라는 느낌이었고 다소 흐린 소리가 아쉬움을 남겼다. 5악장의 여성합창단과 어린이합창단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소리 융합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너무도 어린아이들이 과연 무사히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귀여운 모습으로 그들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주었다. 여성 합창단도 깨끗하고 청아한 소리로 싱그러운 울림을 들려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상적인 연주로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최후의 6악장은 오케스트라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최대치의 감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장대한 대서사시이다. 현악 오케스트라를 필두로 시작되는 피날레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은 말러의 음악이 선사하는 벅찬 카타르시스의 가장 훌륭한 표본들 중 하나이다. 누군가는 <교향곡 2번 "부활">을, 또 누군가는 <교향곡 8번>의 코다를 언급하려 하겠지만 나는 단연코 <교향곡 3번>의 종결부를 말러의 최고의 순간으로 꼽고 싶다. 우리가 말러의 예술을 논할 때 '음악이 전하는 엑스터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감정의 극한으로 몰고 가는 벅찬 환희, 그 순간이 불러오는 오묘함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감흥이다.
3악장 이후 집중력을 잃었던 것은 뼈 아픈 순간이었지만 5악장부터 다시 본 궤도에 올라오면서 마지막 종악장의 활약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물론 이토록 긴 교향곡을 연주하는 과정에서 앙상블의 위기는 어느 악단이라도 올 수 있는 필연성이 있고 말러리안 오케스트라처럼 상설로 운영되는 음악단체가 아니라면 더욱 유지가 힘든 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탄력성이 강했던 이유는 이들이 오로지 말러를 위해 모였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공통된 목표와 의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말러리안 모든 단원들의 진중한 연주력과 성실함은 오늘 그들이 들려준 말러의 교향곡이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을 떠나서 얼마나 단단하게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준 분명하고 완전한 증거였다.
기획과 단원 오디션부터 리허설, 본 공연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이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했던 일인 것처럼 눈앞에서 파노라마가 스쳐간다. 공연 내내 단 한순간도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없어서 가슴을 졸였던 시간들이었다. 이토록 마음이 하나 되어 연주자와 함께 했던 공연은 말러리안 오케스트라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흘린 땀은 분명 완벽함의 추구가 아니라 오로지 말러를 향한 진한 사랑이자 완주를 위해 하나 된 마음을 확인하는 감동적인 작업이다. 그렇기에 말러리안 시리즈는 그들의 무모한 용기와 열정, 도전에 대한 우리 모두의 관심과 응원이 언제나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걸 매번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말러리안 시리즈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남은 결코 쉽지 않은 난관들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우린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강력한 후원자로 남아야만 한다. 그것만이 그들을 오랜 시간 지켜볼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을 통해 말러의 모든 교향곡을 벅찬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탓이다. 진솔 지휘자와 말러리안 오케스트라가 그들의 신념을 오래도록 펼칠 수 있도록 당신의 변함없는 기대와 사랑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