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하모닉의 <시벨리우스 교향곡>은 베를린필 자체 레이블(BPM)로 발매된 음원이다. 래틀이 평소 특별히 아껴왔던 작품으로 그가 지난 2018년 시월, 런던심포니와 내한공연 때도 <교향곡 5번>을 연주했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에겐 정석적인 흐름은 아니었으나 대단히 정갈하고 깔끔한 연주로 기억된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은 예상대로 심플한 해석이다. 군더더기 없는 쾌속의 질주, 맑고 세련된 음향, 머뭇거림 없는 시원스러운 해석은 역시 래틀답다. 북구의 서늘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지만 영국적인 풍성함과 중후함으로 가득하다. 래틀만의 장점은 딱히 단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으로 '특별한 인상이 느껴지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만의 독특한 음악적 매력으로 들리기도 한다. 대부분 시벨리우스를 연주할 때 지나친 무게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래틀은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베를린필의 확고한 앙상블은 최적의 사운드와 유려하게 흐르는 현악 앙상블로 극적 황홀경을 자아낸다. 최후의 피날레는 대평원을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강렬한 음향의 폭풍에 압도되어 깊고 중후하게 종결된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지만 보다 농밀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교향곡 1번>도 그렇듯 클라리넷이 주도하는 어두운 감성은 강력한 현의 보잉이 이어지며 가슴 시린 북구의 낭만으로 휘감는다. 러시아 낭만주의와 완연히 다른 핀란드 대자연의 청각적 발현은 과연 시벨리우스 음악만의 독보적인 마성의 매력이다. 작품이 지닌 선율적, 구조적 힘 때문인지 오케스트라의 한층 두텁고 폭넓은 앙상블은 소리의 울림을 심연으로 쏟아낸다. 정갈하고 장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작품이 지닌 격정과 낭만을 고스란히 전한다. 결코 무겁지 않은 사운드는 그래서 더욱 명징하게 스며든다.
래틀은 과도한 감상주의를 우회하면서 본질에 다가가는 해석을 펼친다. 어쩌면 이는 옳은 선택이라 감히 확신해 본다. 핀란드의 맑은 바람을 맞으며 서유럽의 카페에서 진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특별한 경험은 오로지 래틀의 해석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다. 마지막 4악장의 주제 선율조차 늦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아름다운 목관 앙상블이 현악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 유려함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뤄진 빛나는 결정체이다. 장엄한 총주부 선율이 가슴속으로 파고들면 그야말로 천상의 공간을 유영하는 듯하다. 이 곡이 지닌 웅혼한 힘은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를 몰입과 엑스터시의 경지로 몰고 간다. 폭발적 코다는 완전한 결론을 맺으며 이후 모든 교향곡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