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5번>을 들어보면 그의 독보적인 나르시시즘(Narcissism, 自己愛)을 말러에 투영하면 바로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양날의 검처럼 한없이 세련되고 날 선 아찔한 소릿결, 그러나 결코 말러스럽지 않은 나긋하고 탐미적인 접근방식과 그리 치열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심플하고 낭만적인 해석방향은 극명한 호불호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많은 논란을 일으켜온 '카라얀식 말러'의 독특한 이질성은 어쩌면 "교향곡 5번"에서 극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연주를 받아들이는 감상자의 입장이 다른만큼 옳고 그름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그만의 해석에 대한 심적 동의 여부만 존재할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중도적 입장이다. 결코 최선의 선택이 될 순 없지만 독보적인 결과물로서 이 음원의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얀의 연주는 몰입감이 대단하다. 매끈하고 달콤한 사운드에 베를린필이 펼치는 단단하고 농밀한 앙상블은 의심의 여지없는 명불허전의 솜씨이다. 치열하고 노골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3악장은 안타까움이 남지만 지극히 아름답기에 불만은 상쇄된다. 후반에 몰아치는 다이내믹은 뜨겁고 폭발적이다. 4악장 '아다지에토'는 아마도 그가 이 작품을 지휘하면서 가장 흡족했을 것이 분명하다. 자기 스스로를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1:53]라는 러닝타임은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5악장 도입부의 템포 루바토가 생소한 전개를 보이지만 끓어오르는 고양감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조를 이루며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말러 교향곡 5번>은 가장 대중적인 말러 작품 중 하나인 탓에 연주의 스타일이나 해석의 방향성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카라얀은 주정주의적 접근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동의 여부는 논외로 치더라도 말러 특유의 복잡다단한 내면적 성향과 농염한 음향, 그리고 진한 낭만성이 투영된 연주로서 카라얀의 연주는 충분히 지지받을 만한 존재적 가치를 지닌다. 주세페 시노폴리, 마르쿠스 슈텐츠, 리카르도 샤이의 동곡 연주와 확연히 궤를 달리하는 카라얀은 말러가 표현될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단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궁극적 표본이다. 물론 하나의 독보적 연주로서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