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약속 장소로 가장 선호하는 곳은 영광도서 앞이다. 물론 신세대에게는 아니다. 대부분의 기다리는 사람은 장년층이거나 노인들이다. 아마도 구 시 대인들의 약속 장소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만나기로는 가장 적합하다. 서점 앞 돌의자에서 기다려도 되고 그게 싫으면 서점 안에서 책을 보고 있어도 된다.
영광도서 앞이 선호되는 이유는 두세 가지다. 첫째는 누구나 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서면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만난 뒤 바로 식사나 한 잔을 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제대로 포진해 있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요즘 영광도서 앞 서면거리도 그대로인 곳도 있고 달라진 곳도 있다. 삼계탕집이 폐업하고 식빵 가게가 들어섰다. 동남 갈비와 사미원, 육개장집, 급행장, 소소 횟집은 그대로 있다. 골목 안 가게들도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의외로 그대로다. 왜 골목길 안 가게들이 변동이 없을까?
여러 나라 여러 도시들을 다녀보면 맛집은 구석진 곳이나 시장 내외나 골목길에 주로 있다. 그래서 번화가 큰 길가 음식점을 기웃거리기보다는 구석진 골목길에서 선택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뜨내기 손님들이 선택하는 번화가 가게보다는 동네 주민들이 선택해야만 살아남는 골목가게들이 맛에 집중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 보는 주민들을 상대로 입소문이 나쁘면 정말 유지하기 힘들다. 동네 골목 안 가게라고 무시하면 진정한 맛을 못 보게 된다.
하노이 거리에서도 후쿠오카 거리에서도 타이베이 거리에서도 칭다오 거리에서도 매번 같은 경험으로 찾은 집은 나만의 맛집이었다. 드러내기엔 길거리 설명이 어렵고 내 경험을 들려줘도 떠도는 맛집에 열중하는 이들에겐 들려줘봐야 소용없다. 그러니 나만 알거나 나와 함께 가거나 둘 중 하나다. 올해 끝나가는 시절에 어디로 나가봐야 할까? 그 맛집의 맛은 여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