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또다시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니, 마음 한켠이 저려온다. 일 년 동안 내게 찾아온 것들과 내가 놓아준 것들이 한데 뒤섞여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24년.
나는 올해의 절반을 도서관에서 보냈는데, 그 와중에 한 차례의 이별을 겪고, 학업의 실패를 겪고 또 새로운 분야에 발을 담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여기서 말하는 학업의 실패란 어떤 시험을 망친 일인데, 그때는 마치 세상이 무너진 줄만 알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또 다른 절반은 위당관에서 강의를 들으며 보냈다. 2층에서 세 과목, 4층에서 한 과목. 2학년 때부터 늘 같은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데도, 그 한결같은 공간 안에서 참 많은 것들이 오고간다.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자면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야속하기도 했다.
문득 어떤 장면들이 떠오를 때마다, 이게 올해 있었던 일이라고? 하며 나는 항상 의아해했다. 그럴 때마다 일 년은 너무나 길었고, 동시에 너무나 짧았다. 시간의 원근법이 사라졌으므로 나는 그 길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 길고도 짧았던 일 년 동안 나는 얼마나 자랐나.
하지만 곧 뒤이어 생각한다. 단 일 센티도 자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작년보다 나아진 게 없다고 하더라도, 이룬 게 없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실패만 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하더라도 다 괜찮다.
삶은 일 년 단위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 년 단위로 성과를 보고할 필요도, 삶을 평가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올해가 어떤 종류의 전환점이었고, 내가 정한 어떤 길의 경로를 따라 이제부터 나아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 우리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살아간다는 것을 내게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그걸 이제 와서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새삼 참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그래도 세상엔 여전히 두려운 것들이 많다. 두려운 건 내가 어찌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나는 그냥 즐기기로 한다. 하여튼 즐거우면 된 거니까. 내가 두려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모든 일들이 즐겁다. 그리고 모두가, 모두의 생활이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