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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Aug 26. 2021

절대 돌아보지 마

<싱 스트리트>, 그리고 최근의 상황

영화 <싱 스트리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반응이 느린 편이어서, 예전에 봤던 영화가 나중에 생각나고,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가 되는 경우가 나에겐 종종 있다. <싱 스트리트>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지금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꿈과 사랑을 위해 떠나는 결말이 처음에는 무모하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다. 노래도 좋아하고, 아일랜드에 여행 갔을 땐 성지순례도 다녀왔다. 언제까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꿈이나 목표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까지는 계속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영화도, <Go now> 같은 엔딩신의 OST도 전부.


<Beutiful Sea> 뮤비 찍던 장소(左)와 엔딩 신의 <Go now>가 흘러나오던 항구



최근의 여러 일을 겪으면서 다시금 <싱 스트리트>를 떠올렸다. 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어느 회사에 합격했다. 규모는 작지만 나름 업계에서 인지도 있는 회사였다. 주변에선 감사하게도 많이들 축하해줬지만, 사실 마음은 그리 기쁘지 않았다. 원하지 않던 직무, 거기에 (미안하지만) 너무 체계 없는 면접 과정과 시스템. 마음속에서 선택지들이 일렁였다. 이런 취업난에 일단 그래도 가보는 게 낫지 않나? 하지만 지금 가서 영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몇 날 며칠을 선택 앞에서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사례들만 찾았다. 과거의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던가? 만족하지 못하는 회사에 합격하고도 입사를 포기한 주변인들은 어떤 심정이었나? 결단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쉽사리 선택을 못하고 서성였다.


교착 상태에 빠진 고민의 실마리는 정말로 우연하게 나왔다. 비슷한 사례나 과거의 선례를 찾는 모습이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현재 이 상황에서 각 선택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 그렇게 얻어서 채울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작스레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꿈을 위한다지만 오랜 취준에 지쳐있던 상황. 슬슬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럽고, 나 스스로도 ‘이 나이쯤 됐으면 슬슬 끝내야 하는 게 맞지 않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좋은가? 일이 힘들고, 진짜 원하던 일의 분야에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장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선택으로 꿈을 이룰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흔히 나타나는 마음에 차지 않는 현실 대 불안한 꿈의 갈등이고, 그 어딘가에서 나는 더욱 중시 여기는 가치로의 선택을 해야 한다. 이렇게 갈등의 실체를 명확히 직면하니 생각이 또렷해졌고, 그에 따른 선택의 논리도 조금은 명확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싱 스트리트>가 갑자기 생각난 것도 이때였다. 남주 '코너'와 여주 '라피나' 역시 이런 고민을 했을까 싶었다. 꿈을 위해서 고향을 등지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런던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 여기에 더해 라피나는 이미 한 번 런던에서 실패한 경험도 있다. 그 부담을 안은 둘이 다시 런던으로 떠났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앞날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의미의 폭풍우를 맞으면서도 웃었을 땐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그 결말이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언제부턴가 매력적이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꿈을 정면으로 택한(?) 모습이 나로서는 멋있어 보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선택을 앞둔 상황에서, <싱 스트리트>가 생각난 이유이기도 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선택을 회피할 이유가 없었다.

적당히 해선 안 돼!




결국 나는 입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아직은 좀 더 도전해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고, 기회도 조금 더 남아있다고 봤다. 뒤를 돌아보면 끝이 없을 것 같던 갈등이었지만, 정면에 서서 직면하니 오히려 실마리가 쉽게 풀렸다. 불안정한 현실로 다시 돌아왔지만, 어렵게 내린 결정에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꿈을 위해 고향을 등지는 과감함까지는 아니지만, 원하는 목표를 위해 어려운 선택을 내렸다는 자신감 정도는 얻어간 경험이 아닐까. 적어도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상황에서 '지금'을 택했다는 생각으로 남겨두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xi5_vEp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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