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 Jan 07. 2022

미생(이 된) 이야기

지난 근황, 그리고 새로운 시작.

항상 써야지써야지 하며 생각하면서도 브런치 글을 쓰지 못했다. 몇 번 써보려고는 했는데, 어거지 소재와 구성으로 쓰려니 알량한 자존심이 허용을 못했다. 지금이라고 대단한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큰 변화가 생긴 지금 무언가 기록은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나마 남겨보려는 글.




한 언론사의 인턴을 했다. 모 회사의 입사를 포기한 지 불과 일주일만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두 달간 인턴을 하고, 일부가 전환이 되는 방식. 전환의 압박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할 일이 생겨 인턴 합격 당시에는 마냥 기뻤던 걸로 기억한다. 8월 마지막 즈음의 일이다.


두 달이란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새로운 일과 사람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라는 안도도 잠시, 이후엔 성과에 대한 압박이 조금씩 다가왔다. 높은 전환률이라곤 하지만 이전 선례로 미루어볼 때 어쨌든 탈락자가 있을 것이고, 그게 내가 안 되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했지만, 불행히도 나는 빠르게 성과를 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좋은 취재를 위해 이리저리 연락을 돌려도 허탕인 날이 더 많았다. 간신히 아이디어를 통과시켜 발간 일정까지 잡힌 기획이 짤린 적도 있었다. 그날엔 새벽 내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압박을 이겨낼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과정이 끝난 지금에도 명확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대단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에 두 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고, 단시간에 묘수를 생각해낼 만큼 창의적인 성격도 되지 못한다. 그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인복과 어느 정도의 운이 도와주지 않았나 생각을 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과정을 넘어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것은 '다행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했음에도 운이 따라줘서, 운칠기삼이라는데 이번에 결국 7의 부분이 채워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 모든 다행이라는 생각 속에서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오던 언론인이 됐다.




뜬금없어 보일 수 있는 얘기지만 인턴 기간 동안 웹툰 <미생>을 자주 봤다. 마침 연재가 재개되어서 다시 주목받고 있기도 했고, 채용연계형 인턴을 겪은 주인공 장그래의 모습에서 묘한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가지 재밌었던 점은, 인턴 이전과 이후의 공감 포인트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미생>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대기업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인턴 장그래의 모습이었다.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스무살의 나는 아직 닥치지도 않은 나의 취업준비 생활을 상상하며 장그래에게 묘한 공감을 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정작 채용연계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니 고생하던 모습 대신 인턴 이후 하염없이 잠을 자던 장그래의 모습이 눈에 더 들어왔다. 나이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고, 상황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 역시 인턴 기간 내내 '끝나면 푹 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인턴이 끝나고 하염없이 잠을 잤다는 것이다. 만화와 현실의 묘한 공감이 이런 데서 생겨날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과 생각을 거쳐 초보 언론인, 미생이 됐다. 지금도 바쁜일이 많고, 주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사실 확신은 없다. 그래도 '되어야겠다' 식의 언시생 마인드를 넘어 다른 생각을 보여주는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이행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은 있다.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으리라고 생각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글로, 조금씩이나마 쓰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미생이라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