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와 '인생 콘텐츠'
"당신의 '인생 콘텐츠'를 소개해주세요"
신입사원 교육 기간 때 받은 과제였다. 적당히 해도 되는 걸 알면서도 꽤나 고민했다. 감동받은 콘텐츠야 많았지만 '인생 콘텐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글쎄... 과제로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표현하고 싶다는 쓸데없는 진지함이 일어난 점도 컸다. 뭘 골라야 내 생각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작 회사 교육 과제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할 줄은 몰랐다.
고민 끝에 <강철의 연금술사>를 골랐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만한 작품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나온지는 20년, 처음 접한지는 15년이 다 돼가는 작품이지만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점이 컸다.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함을 아직 가지고 있고, 특유의 메시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오래된 작품일지언정 '인생 콘텐츠'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주인공 형제 에드워드와 알폰스의 실패로 시작한다. 물질을 분해해 다른 물질로 만드는 마법+과학인 연금술이 있는 세상. 형제는 죽은 엄마를 되살리고 싶다는 마음에 금기시된 인체 연성을 시도하지만, 금기를 어긴 죄로 형 에드워드는 팔다리 하나씩을, 동생 알폰스는 몸 전체를 잃어 갑옷에 혼을 정착해야만 살 수 있는 신세가 된다. 오만함의 대가로 형제는 '등가교환(等價交換)'이라는 연금술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 죽은 자를 감히 되살리려 한 오만의 대가로 형제는 몸을 잃었고,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여정에 떠난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교훈은 없다.
인간은 어떤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므로
거스를 수 없는 등가교환의 법칙은 작품을 꿰뚫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작중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법칙에 순응하기도, 법칙 앞에 좌절하기도 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법칙과 진리의 냉정한 잔인함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려는 이들은 이 작품 최대의 빌런들이다. 진리는 한계고, 한계 앞에 선 인간들의 생생한 군상은 완결 10년이 지난 지금도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인생 콘텐츠'로 떠올렸던 이유다.
'인생 콘텐츠'를 정했다면, 이제는 이걸 어떻게 소개하느냐가 문제다. 작품의 메시지와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접할 수 있을까. 생명존중, 과학윤리, 반전 등 다양한 소주제를 가진 작품이었다. 각각 하나씩 소개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등가교환의 법칙을 소개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애매했다. 그렇다고 등가교환 하나만 소개하기엔 너무 오그라드는 느낌도 있었다. 좋은 방법이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만화책 책장을 계속 넘겼다.
실마리는 작품 마지막 즈음에서야 나왔다. 진리 앞에서 작중 내내 고민하던 형제가 최후의 선택을 내리는 순간이다. 이런저런 여정 끝에 형제는 몸을 되찾으려면 인간 1명 분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몸을 되찾기 위한 매개로 형제가 찾던 '현자의 돌'을 이용하면 그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자의 돌은 인간의 혼을 추출한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우리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지 말자'라고 맹세했던 형제는 돌의 진실을 알고 이를 이용하지 못한다.
남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 형 에드워드는 고민 끝에 발상을 전환한다. 자신의 연금술 능력을 희생하기로 결정한 것. 모든 인간에겐 연금술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돼 있으며, 이를 바쳐 인간 1명 분의 비용을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에드워드 앞에 선 '진리'는 '연금술을 쓸 수 없는 보통 인간으로 되돌아가도 괜찮냐'라고 비웃지만, 에드워드는 되레 '나는 원래 일개 인간이며, 자신을 과신하다 실수만 연발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한계를 인정하고 성장한 에드워드의 모습에서 진리는 작중 처음으로 크게 미소를 짓는다. 인간은 부족하고, 한계 앞에서 무력하다. 하지만 그 한계와 무력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형제가 자신의 실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클라이맥스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교훈은 의미가 없다.
인간은 어떤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므로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인간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하는 강철 같은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뭐가 맞는 거다, 맞지 않는 거다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었고, 무엇이 맞고 옳은지 헷갈려서 한참을 고민했을 때도 있었다. '맞는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언론을 꿈꿨는데, 정작 '맞는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라 좌절했었던 적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 취직을 하면 어느 정도 답을 찾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뭐가 옳고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부족한 내가 그런 걸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상황에서 <강철의 연금술사> 마지막 장면은 나름 잠정적으로 내렸던 결론을 떠올리게 해 줬다. 많이 부족하고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닐까. 그렇게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이 되고, 타인에게 그 나음을 전달하고, 그렇게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찾은 형제는 여행을 떠나며 '10을 주면 1을 얹어 11로 주는' 등가교환을 부정하는 새로운 법칙을 고안한다. 성장한 형제의 모습이 더 나은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나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11로 돌아간다면 좋은 언론인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발표 주제 윤곽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잠정적인 결론인 만큼 평생을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계속 '맞는 것'을 찾을지도 모르고, 어느 새부턴 찾는 것 마저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더 나아지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있는 이상, 여전히 나는 <강철의 연금술사>를 좋아할 것 같다. 중학교 때 추억이 30대 들어서 새롭게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