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 May 10. 2022

또영업자, 그리고 1리터의 눈물

'얘기되는 것' 뒤의 이야기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3개월 조금 넘는 시간들을 쉽사리 잊지 못하겠지만, 글로 옮기자니 내키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글이든 영상이든 '수습기자 이야기'가 이미 닳고 닳은 소재이지 않나 고민도 들었고, 점점 나아지는 수습기자 교육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아니꼬워 보일 수 있다는 겁도 지레 들었다. 


생각을 갈무리하는 정도로만 언급하고 넘어가면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일을 하면서 계속 고민할 지점들에 대해 쓰면 좋겠다 싶었다.

수습 기간 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종로경찰서




기자 세계에서는 '얘기된다/안된다'는 표현을 쓴다. '얘기가 된다는 것'은 상황이나 사례가 특이하거나 극단적인, 소위 말하는 뉴스거리를 의미한다. 얘기되는 사례 3개만 있으면 기사가 된다는 말도 있을 만큼 사회부를 포함한 많은 기자들은 뉴스거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한다.


당연히 얘기되는 사례는 그렇게 쉽게 찾을 순 없다. 전국에 한 두 개 있을까 말까 한 극단적인 경우도 있고, 간신히 찾은 취재원이 취재를 거절할 때도 있다. 기껏 어렵게 따온 건수를 선배가 '얘기가 안된다'며 잘라버리기도 한다(대부분 선배의 생각이 맞다). 수습 기간은 어찌 보면 어떤 게 얘기가 되고 안 되는지 능력을 함양하는 기간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영업자 기사는 '얘기되는 것'과의 진부한 싸움이었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사회부 사건팀의 주요 기사 중 하나였다. 단순한 불평은 얘기가 안 된다. 최대한 특이하게, 자세하게 사례를 찾아야 했다. 손해 규모부터 시작해서 가게 크기, 폐업 결정 이유 등등 불만을 최대한 여러 가지로 담는 것이 목표였다. 당연히 재미는 없고, 거리두기 방침이 바뀔 때마다 사례를 또 모아야 한다. 이 지루한 기사를 우리는 '또 자영업자다'는 의미로 '또영업자'라고 불렀다.


'또영업자' 취재는 항상 무미건조했다. 몇 번 하다 보니 질문도 뻔했다. 가게는 얼마나 크고, 직원은 몇 명이며, 피해는 얼마고, 심경과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뭔지 등등. 거리두기 효과 없다, 망할 지경이다, 정부가 원망스럽다... 답변도 항상 비슷비슷했다. 모두가 위기다 보니 답변을 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적이 더 많았다.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던 건 수습 막바지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루틴한 자영업자 취재를 하던 날, 전화를 하던 음식점 사장님의 가계 빚이 3억을 넘었다고 들었을 때였다. 코로나 이후 까먹은 돈 3억이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매출이 반 넘게 줄어 폐업을 고민 중이라는 사장님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항상 듣던 이야기가 왜 그날따라 조금 다르게 들렸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수년 동안 버는 것 없이 빚만 억대가 넘어가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턱 눌리는 상황이 사장님에겐 현실이었는데, 나는 또 하나의 '또영업자'로 생각하고 넘어간 건 아니었는지. '얘기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해서 엄혹한 현실마저 내가 무시하고 넘어가는 건 아니었을지. 사장님의 멘트는 결국 기사에 실리진 못했지만,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들었던 취재였다.

괜스레 기억에 남았던 부암동의 어느 폐업문구


'얘기되는 것'만 생각하고 넘어가기에 어려울 때가 가끔 있다. 인턴 때 만났던 소뇌위축증 장애인 분도 그런 사례였다. 온몸이 굳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가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유튜브를 찍고 일기를 필사적으로 썼다고 한다. 희귀병인 소뇌위축증을 알리기 위해 언론 취재에도 적극적이었다. 나와 인터뷰를 할 때도 소뇌위축증을 다룬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병을 알리려 노력했다.


안타까운 사정이 마음속에 남았던 취재원이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얘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미 많은 언론들과 접촉했던 사람이었고, 본인 유튜브에서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1리터의 눈물'을 언급한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도 꽤 있었다. 여러 사정상 기사화를 추진하더라도 안 됐을 가능성이 높다. 괜한 기대를 주고 싶진 않았지만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었다. 회사 내부와 상의해서 말씀드리겠단 정도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이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던 취재였다. 어렵사리 잡은 취재원에 대한 아쉬움은 첫째고, 안타까움은 그다음이었다. 비슷비슷한 인터뷰도, 유튜브 내용도 본인에게는 필사적인 삶의 한 조각일진대, '얘기되는 것'만 찾는 사이 놓친 게 있는 건 아닐지. 하루하루의 '얘기'를 찾는 사이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것들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업무적 숙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속에 걸릴 때가 많다. 3억을 잃었단 자영업자 분을 인터뷰하면서 잊고 있던 인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이런 고민을 계속하게 될 터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이 잡을 수 있을까. 잊지 않고 계속 고민하는 것이 현재로선 잠정적 해답이다. 잊지 말고 고민하자. 답이 안 나와도 생각하자. 굳이 이렇게 글로 남겨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나아지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