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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an 17. 2022

포로수용소에서 탄생한 걸작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괴를리츠의 Stalag VIII-A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걸작을 탄생시킨 작곡가가 있다. 작곡만 열심히 해도 앞날이 불투명한데 서른이 다된 나이에 불의를 참지 못해 군대에 자진 입대했다가 생긴 일이었다. 애초에 범상치 않은 사람이긴 했다. 친구들이 뛰어노는 시간에 그는 숲 속에 가만히 앉아 새를 관찰했다.


 '엄마, 새소리는 참 신기해요!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의 음악 중 가장 아름다워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그는 음악과 성경,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수용소에서 노동 대신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남다른 감수성과 통찰력을 알아본 간부가 몰래 오선지와 연필을 쥐어줬기 때문이었다.


수용소에서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의 마지막 예언서 '요한계시록' 10장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 곡은 5000명의 포로와 독일 간부들 앞에서 연주되었다. 언제 전쟁이 끝날지 모르는 절망 속에 한줄기 빛으로 피어난 음악, 희망의 울림으로 가득했을 수용소 현장은 상상만으로도 벅차오른다.  


포로의 신분으로 수용소에 평화를 선포한 33세의 청년 작곡가. 그는 바로 21세기 프랑스 현대음악의 거장,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이다. 그리고 8개의 악장으로 총 연주 시간이 50분에 달하는 이 작품의 제목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Quatuor pour la fin du Temps)'다.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꾸준히 작곡을 이어나갔다.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평생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살다 간 메시앙은 여전히 새를 사랑했고 조류학자로도 활동했다. 현재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의 작곡, 이론과 교수들의 대부분이 메시앙의 제자인 만큼 그는 21세기가 낳은 최고의 작곡가이자 멘토 중 한 명이다.


그리고 2021년 4월... 이 작품이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찾아왔다. 


코로나로 공연을 아예 할 수 없던 때였다.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교수 브라이언 그린의 'End of Time'을 읽던 중 불현듯 이 작품이 떠올랐다. 지구 온난화, 자연재해 그리고 전염병까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재앙의 징조를 이 곡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틈틈이 작품이 주는 이미지를 글로 옮겨 적기 시작했고 어느새 프로젝트 'End of Time' 기획안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는 팀 '앙상블 뷰티풀 랑데부'매니저가 마침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온라인 프로젝트 지원 사업 공모가 떴다며 연락을 해왔고 덜컥 국가 예산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몰랐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어쨌든 그렇게 세계 최초로 최장 러닝타임을 가진 뮤직비디오 '시간의 종말' 제작이 시작되었다.

 

제작하면서도 여러 번 느꼈지만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작품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2021년 운명처럼 다가온 이 작품을 외면할 수 없었고 하늘이 열리듯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이왕 담아내야 한다면 치열하고 집요하게, 후회 없이 해보고 싶었다.


이 매거진은 지난 8개월의 제작 과정의 기록이자 작품에 대한 고백이다. 아마 모든 사람에게 공감받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고 발견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만약 이 영상과 매거진이 단 사람에게라도 새로운 예술적 인사이트를 선사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된다면 그걸로 감사하며, 매우 충분할 것 같다.



Teaser | 'End of Time' O. Messiaen & Ensemble Beautiful Rendez-vous 앙상블 뷰티풀 랑데부 '시간의 종말' - YouTube

   


MV 'End of Time' 시간의 종말 Playlist


 I. Liturgie de cristal 수정의 전례


II. Vocalise,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du Temps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보칼리제


III. Abîme des oiseaux 새들의 심연


IV. Intermède 간주곡


V. Louange à l'Éternité de Jésus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미가


VI. Danse de la fureur, pour les sept trompettes 일곱 나팔을 위한 분노의 춤


VII. Fouillis d'arcs-en-ciel,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du Temps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뒤얽힌 무지개


VIII. Louange à l'Immortalité de Jésus 예수의 불멸성에 대한 찬미가


Epilogue - Le Merle Noir 검은 티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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