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ST 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rao Kim Jun 11. 2024

살인의 추억 - 우울한 편지

내겐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세상에 '봉준호' 이름 석자를 알린 기념비적인 영화다. 198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개봉 당시까지만 해도 미제 사건이었던 경기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뤘기 때문에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었다. 

추억은 사실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뇌리에 깊이 박힌 추억은 오히려 이불킥 마려운 장면들이다. <살인의 추억>은 실제로 존재했던 1986년도의 그 사건, 나아가 그 시대의 부끄러운 추억을 들춰낸다. 물론 사회 고발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어설픈 반성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화될 수 없는 간절함을 표현하며 그 시절의 인물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마치 '어쩔 수 없었잖아'라고 말하듯 말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전형적인 버디물이자 범죄 스릴러이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늘 그렇듯 아이러니함으로 도배돼 있다. 끔찍한 살인 사건 현장은 잘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정겨운 시골 동네며, 철부지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애초에 수사를 하지 않고 부적이나 쓰는 형사와, 전혀 틀린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가 환장의 조합을 보여주며 수사는 원점에서 출발조차 못한 채 허무한 결말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범인은 물론 범행 장면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 사건만큼이나 애매하고 모호하게 진행되어 가는 영화는 간간이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서도 근본적인 우울함을 내포하고 있어 씁쓸한 뒷맛을 자아낸다.

그런 점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발라드 곡임에도 메이저와 마이너, 그마저도 7화음과 텐션음을 가미해 불협하고 불안정하면서도 우울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관악기 소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발라드이지만 전혀 수려하지 않다. 그런 아이러니가 영화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가사는 또 어떠한가. 당최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우울한 편지>라는 이름에서 연인의 이별 편지인가 싶기도 하지만 가사 어디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왜 우울하다는 건지, 심지어 우울한 게 맞긴 한 건지 알 길이 없다. 

이 곡은 극의 전개에 핵심이 되는 요소로도 쓰인다. 범인을 추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벌스(특이하게 마지막에 코러스가 아니라 벌스로 마무리된다.) 가사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그 결말을 표현하는 것 같아 냉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멋쩍은 추억, 죄스러운 추억도 이미 과거이니 이제 나와 관계없는 일 아니겠는가.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 

한 줄 한 줄 또 한 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

https://youtu.be/uh_45wR4hks?si=iL_TuO7OYiuADNuL

매거진의 이전글 라스트미션-Don`t let the old man i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