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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Jul 19. 2022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여름을 보내는 일

실비제르맹 <페르소나주>


“수학자의 내적 동기는 예술가의 그것과 같다.”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인터뷰를 읽었다. 기형도 시인처럼 시를 쓰고 싶었다던 그는 두 분야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을 고도의 함축적인 언어와 상징, 논리로 전달하는 게 공통점이라고, 수학자와 예술가의 내적 동기는 같다고 했다.


“굉장히 애써서 어떤 아름다움을 간신히 봤는데 나만 아는 게 아니라 너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덧붙인 말을 읽으며 감히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어떤 강한 끌림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이 느낌이 당신에게도 닿았으면 하는 마음. 그것은 많은 분야의 거대한 동기일 것.


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도 <페르소나주>에서 ‘쓰는 동기’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쓰고 싶은 욕구. 그게 뭔지 모르지만(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찬 커다란 침묵) 자기에게 익숙한 단어들로 번역하고 싶은 욕구. 저 깊은 낯섦을 모든 사람이 아는 언어로 번역하고 싶은 욕구.” (p.24)


페르소나주(personnages)의 사전적 의미는 ‘소설가가 구현하는 등장인물’이다.


“작가가 구현하는 등장인물과 맺는 기묘한 관계성을 환기하는 몽환적 픽션”


“글쓰기를 더없이 욕망하는 몸에 대한 고백서”


책날개의 소개글조차 낯설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봄 이례적으로 강렬했던 실비 제르맹의 언어에 매료됐지만 익숙지않아 리뷰를 주저했던 책. 최근 허준이 교수의 인터뷰를 읽다 기록하고 싶어졌다.





모든 책은 연결되어 있다. 가끔 그 빛나는 연결고리를 발견하면 그 빛이 당신에게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언가 적기도 한다. 머릿속에서 뒤엉킨 두근거림을 근사하게 남겨두고 싶지만 그게 쉬울 리 없다. 무슨 의미가 있나. 이게 뭐라고. 어쩌면 ‘엄마도 선생도 아내도 아닌 정체성’일 내 ‘쓰는 자아’는 가끔은 몸도 마음도 지쳐서 다 그만두고 싶다..가도 이미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른다.


거칠게 말하자면 좋은 글을 읽을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무언가 유용한 것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그래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마는 것. 마음을 쓴다. 자승자박. 몰랐어도 될 열매를 먹어버린 기분. 그것은 일희일비하는 나의 어림을 수시로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도, 그래도 쓰고 싶다면, “함께 가늘고 길게 망합시다(웃음)” 전에 임경선 작가가 작가지망생 대상 강연에서 그랬다. 나는 망하기 싫은데.




나는 읽을 때 묶여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는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 속 이 문장을 떠올렸다. 글쓰기는 종종 해방에 비유된다. <페르소나주>에서 실비 제르맹도 말한다. “오감을 뒤흔드는 독서. 평범한 것만이 아니라 이례적인 것을 탐하는 독서.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란히 관찰하고 수염 뿌리같은 복수성의 독서. (중략) 생생한 독서란 세계를 감응적으로, 그리고 지성적으로 느끼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밝혀진 의미의 위치를 옮기고 변화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읽기란 곧 쓰기이며 ㅡ


“쓰기의 몸짓은 늘 해방의 몸짓이었다,” 고.


내 몸이 쓰려는 것도 어쩌면 해방이다.





희망은 날개달린 것, 디킨슨이 말했던가. 나에게 희망은 지속하는 것이다. 환희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쓰는 담담하고 성실한 삶. 내가 꿈꾸는 사랑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사랑은 삶의 태도가 된다.


비오던 지난 수요일 아침 문학동네에서 이메일로 전해준 우사시(우리는 시를 사랑해) 레터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지속하는 것들은 안정감을 주지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여름을 보내고 계시기 바랍니다.


그날의 문장은 다정했다. 더위를 누르던 비만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계절을 보낼 수 있기를,

부디,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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