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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Jul 08. 2022

조금 늦고, 주저하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선택적 함구증을 가졌던 자매의 <이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새로 온 학생은 몸집이 작고 예쁜 눈을 한 남자아이였다. ‘선택적 함구증’을 가졌다는 설명을 전해 들었다. 생소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고 공식적인 이유에 외려 마음이 편해졌다. 한마디라도 더 하고 오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바람과 달리 영어 수업 시간에 더 입을 떼지 않으려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 기초는 잘 되어있는 편이었고 수업 태도도 무난해 의무적인 발표라도 예외로 했고 특별히 강요한 일도 없었다. 덕분인지 아이가 수업 시간을 좋아했다고, 나중에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 어떤 상처나 선천적인 결함이 있는지, 아이가 함구하는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매일 학생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업이다. 답지 않게 학교 홍보대사 같은 것을 했었던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지만 나도 한때 ‘말 없는 아이’였다. 발표라도 있는 날이면 불안감에 전날 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는데도 차례가 오면 뺨에 경련이 일었다. 온몸의 피가 얼굴로 솟는 기분. 떨리는 목소리를 내가 듣다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을 억지로 견디고 나면 후회와 자책이 남았다. 엄마는 ‘숫기 없는’ 딸을 염려해 웅변학원(그 시절엔 이런 게 있었다), 문화센터의 뮤지컬 수업에 등록해 나를 보냈는데 기억나는 것은 간장 공장 공장장, 정도. 그거라도 남았으니 다행일까. 어떻게든 자신 있는 모습으로 ‘변하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는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쌍둥이 자매의 에세이다. 성장기가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둘을 열두 살 즈음까지 ‘자폐는 아니나 극도로 낯가리는 아이들’ 정도로 규정지었다고. 뻔한 내용이진 않을까 싶었는데 ‘아, 이건 마치 내가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다행인 것은 저자가 둘이라는 것. 심리학에서는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존재해도 스스로 생을 마감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고 본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자매는 기꺼이 서로의 귀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따뜻했다.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울보였다는 것. 유치원과 학교에서 가면을 쓰고 감정을 숨겼지만 혼자가 되면 자주 울었고 그나마 자신 있었던 것은 ‘글짓기’였다고.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 대신 돌봐주신 할머니와의 추억도 애틋하다. 들기름을 슥슥 발라 갓 구워낸 김처럼 고소한 일화(할머니가 김을 자주 구워주셨다고 한다.)를 읽으면서는 자못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이건 흡사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 별것 아닌 것을 기억해 시간을 그때로 되돌려놓는 능력은 타고난 걸까. 어쩌면 말하기보다 보고 듣는 것을 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안 해본 일들을 번거로워하는 나도 어린 시절 아빠가 주말마다 산으로 바다로 나와 남동생을 끌고(당시엔 이런 느낌이었다) 다니는 것이 늘 버거웠는데 생각해보면 오늘의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한 기억들이다. 가끔, 나도 다섯 살 된 딸아이가 떼를 쓸 때면 휴대폰 속 즐거웠던 순간들을 꺼내 보인다. 언제 울었냐는 듯 기분이 나아진 아이를 보면 더 좋은 추억을 주고 싶어 지고. 사람은 사랑받고 사랑한 기억만으로 미래를 살 수 있는 존재다. 어떤 이유에선지 온전히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지만, 저자에게도 작은 기억들이 큰 힘이 되었을 것.


선택적 함구증, 이라고 명명했지만 실은 그저 조금 심하게 내성적인 아이였을 뿐일지 모른다. 말하기를 강요하지 않기. 부모의 경험을 나누고 응원할 것. 환경의 변화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래 내향적인 아이들은 스스로가 가진 섬세함으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에 사려 깊고 배려심이 좋은 편이다. 사회생활에 실패하고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게 본래의 성향을 강점을 배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당부에서 저자의 진심을 읽었다.


수전 케인도 <콰이어트>에서 힘주어 말하지 않았던가. 외향적인 사람이 롤모델이 되는 세상이나 내향적인 사람들은 풍요로 가득 찬 내면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졌다고. 조금 늦고, 주저하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그러니 더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단한 성장의 순간이나 비결 같은 건 없지만 잔잔하고 차분해지는 글들이라 저는 좋았어요.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느끼거나 내향적인 아이를 기르고 있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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