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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Jun 30. 2022

교양의 무게에서 해방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벌레가 된다. 혹 무슨 벌레인지 기억하는 독자분이 계실까.


고교시절 학교 자체 행사가 꽤 많았는데 계절마다 치르던 ‘독서퀴즈’도 그중 하나였다. 이 웃지 못할 질문의 출처다. 예나 지금이나 바쁜 학생 신분으로 교과 외 고전들을 꼼꼼히 읽어내기란 설레면서도 괴로운 일이었지만 덕분에 아직까지 기억나는 것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 자칭 말랑한 편독가인 지금이라면 절대 읽을 수 없을 묵직한 교양서들인데 지금 그걸 말하자는 건 아니고.


문제는 앞서 적은 바와 같이 그 퀴즈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다소 치사했다는 것. 당연히 줄거리 요약본만 쓱 읽고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한 나름의 비책이었다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토록 ‘한국적’ 일 수 있을까 싶은 기억. 그야말로 ‘K-독서’를 방불케 하는 일화다. 일전에 미키김과 조승연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MMM에서 한국, 미국, 프랑스 교육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은 what, 미국은 how, 프랑스는 why가 중심인 것 같다는 견해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인간의 실존과 부조리를 묘사하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고 묻는다는 게 ‘무슨 벌레냐’니. (나도 그 문항을 틀려서 하는 말이긴 하다.)




제목에 끌려 읽은 프랑스 정신분석가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저자는 오스카 와일드의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서두로 ‘비(非) 독서’가 터부시 되는 사회적 통념을 비판하고 나아가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아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다독이 곧 교양으로 여겨지는 문화에서 자칫 조심스러울 수 있는 주장을 적재적소의 예시와 함께 도발적이고 매력적으로 풀어내 읽는 내내 감탄했다.


‘사랑’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소제목 아래 연애와 독서의 연관성을 밝힌 부분이었다. 상대가 읽은 책, 좋아하는 음악, 영화를 찾아보며 취향조차 맞추려는 시도. 연애를 시작했다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적당한 관심은 사랑스럽다.) 그러나 저자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들만 한다거나, 언제나 정확히 그가 기대하는 존재이고자 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 앞에 “연약하고 불확실한 하나의 주체로 서기를 중단하는 것(p.150)”이기 때문.


ㅡ아이러니하게도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


어디 연애뿐이겠는가.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대중이 듣고 싶은 말로 잠시 호감을 살 수는 있겠지만 잠시다. 오롯이 자기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방법은 아닐지라도.




그건 그렇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가 변신한 벌레는 ‘말똥 벌레’였다. 소설 말미에 하녀가 ‘이 더러운 말똥 벌레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번역서만 겨우 읽어본 1인은 저자의 의도를 알 도리가 없다. (정확한 원문을 아신다면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건 집단에서 주어진 ‘역할’을 멈추었을 때 돌아오는 차가운 시선, 가장의 무능이 키워낸 구성원의 놀라운 자생력과 씁쓸함, ‘쓸모’가 아니라면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실존에 대해 독자는 독창성과 상상력을 더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독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라는 집단을 벗어나면 더 이상 사회는 ‘정답’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책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도록 교육이 기능할 때 다음 세대의 내적 일탈과 창의력도 가능해질 것. 이 담론은 ‘what’을 답하는 것을 넘어 자기의 생각을 통찰력 있게 펼치는 힘, 그것으로 텍스트와 교양의 무게에서 해방되어 자신 있게 삶으로 나아가라는 저자의 당부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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