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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Feb 27. 2024

긴 터널 끝에 빛이 있을 거라고

브라이언 딜런 《에세이즘》

책 정리를 했다. 일종의 이별 의식이었다. 3년간의 책 인스타그램 계정과의. 수면 부족과 자가 증식하는 책들을 양산하며 읽고 쓴 기록. 바야흐로, 사랑의 한 시절이 끝난 것이다. Adieu!     


어떤 나쁜 일에도 좋은 면이 꼭 있어.     


해킹 사건이 있기 직전 엄마가 여행지에서 했던 말이 복선처럼 뇌리를 스쳤다. 엄마 봐, 남편 없이도 이렇게 잘살고 있잖아. 정말 그랬다.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은 2014년 2월, 아버지의 49재를 지낸 뒤였다. ‘연약함’에 형체가 있다면 당시의 우리가 아니었을까. 장례 관련된 각종 서류를 처리하고 떠난 10년 전. 툭 치면 울음이 터질 것 같던 엄마의 멍한 얼굴이 선연하다.    

 

2024년 2월, 우리는 전보다 행복해졌나. 다만 살아있다는 것. 세 번의 유산 끝에 나에게는 두 아이가 생겼고 혼자된 엄마가 마지막 의무로 여겼던 아들, 내 남동생에게도 가정이 생겼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불안하지만, 낯선 땅에 도착하자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상실의 좋은 점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해킹 직전 나는 계정 노출을 늘리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서평단을 모집했고 빠지면 아쉬운 출판사 책 협찬에 공동구매까지 빈틈없이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멈추고 싶어도 포기하는 법을 잘 몰랐다. 수익이 큰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명확한 목표도 없었다.     


지드래곤은 X을 싸도 박수를 받아.     


가끔 친구들과 이런 농담을 했는데, 여기에는 되든 안 되든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자조가 포함돼 있었다. 영향력이 곧 권력인 시대니까. 고작 1만 인스타그램일 뿐이지만, 이왕 시작한 거 잘하고 싶었으니까.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 이거였나, 가끔 궁금했지만 오래 묻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생계와 육아 시간을 빼고 잠을 줄이며 읽고 쓰는 일을 쳐내듯 반복했다. 그나마 읽고 쓰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다. 하다 보면 길이 나오겠지. 뭐라도 하자. 그게 이유였는지도.





총 39권 매입되셔서 151,400원입니다. 현금으로 받으시겠어요?


1차 책 정리로 다정한 책생활 독서 모임 멤버들과 15권을 나누고 39권을 팔았다. 십 오만 원이라니. 이혼을 해도 위자료라는 게 있는데. 억만금을 준대도 바꾸지 않았을..(억만금을 준다면 바꿨을 것이다..)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하 이걸로 돈 벌긴 어렵겠구나. 왜 하필 나는 책이 좋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고 초과로 매입이 불가한 도서로는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과 하지현 박사의 《정신과 의사의 서재》. 에세이 특성상 다들 소장할 만큼은 아닌 거다. 내놓으면서도 내심 아쉬웠는데 잘됐지.



에세이를 좋아하세요..

사강 소설 속 시몽처럼 젊고 매력적인 청년이 다가와 물어봐 줄 리 없으니 자문자답을 해보자면 나는 에세이가 좋다. 쉽게 읽히는 낮은 진입장벽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장르인 것도 마음에 든다. 장강명 작가는 에세이를 ‘사람을 성장시키는 장르’라고 적었다. 글쓴이의 민낯이 가장 잘 드러나서일 것이다. 삶이란 본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니까.      

민낯을 드러낸 그들은 대체로 친근하고 매력적인데, 이유는 ‘완벽하지 않아서’다. 아일랜드 비평가 브라이언 딜런은 《에세이즘》에서 이렇게 쓴다.


“에세이는 질료의 핵심을 표현해 내고자 하고 그것을 위해 세련됨과 온전함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완전하다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기를 고집한다. 불완전함이 대담함, 호기심, 불안정한 흔들림이라는 글 쓰는 정신의 본성을 더 잘 반영해 주니까.”


물론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스타일과 디테일을 갖추어야 하며 잠언과 같은 아포리즘을 포함하면 좋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에세이즘》 목차에 ‘위안에 관하여’가 다섯 번이나 등장한다는 점이다.



스타일이건 디테일이건 간에 독자가 에세이에 기대하는 것은 ‘위안’이라는 방증 아닐까.


저자는 롤랑바르트의 《밝은 방》을 언급하며 덧붙인다.

“바르트의 다른 글들,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아니 사랑하는 에세이스트들의 글 대부분에서, 아니 모든 글들에서 나에게 소중한 것은 그 연약함이다.”

수잔 손택부터 버지니아울프, 벤야민과 보들리야르까지, 얼핏 난해한 듯 보이지만 숙명적 우울증의 고통 속에서도 꾸준히 비평가,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로 살아 온 저자는 말하는 것 같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었다고. 아니,


삶이라는 길 위에서 우리는 이토록 불완전하고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내자고. 서로를 지탱해 버티다 보면 긴 터널 끝에는 빛이 있을 거라고, 마침내.



@luv_minyu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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